[Day 151] 비야리카 화산 트렉킹 (Volcan Villarrica)
푸콘 마을에서 보이는 비야리카 화산(Volcan Villarrica). 요건 우리 방에서 보이던 풍경:)
호수마을이라 물에서 할 수 있는 래프팅 등의 액티비티도 많지만 가장 매력적인 건 눈으로 뒤덮힌 저 비야리카에 직접 오르는 화산트렉킹!
하지만 사진에서 보이듯 눈과 얼음, 그리고 구름으로 뒤덮힌 화산에 오르려면 날씨운이 좀 필요하다.
맑은 날이 많고 기온이 높은 여름성수기에는 거의 매일 오를 수 있다고 하지만
3월 초인데도 벌써 추워진 날씨에 눈이 아니라 얼음이 덮히면 등반이 위험한데다 우리가 푸콘에 있을동안엔 날씨가 흐렸다 맑았다 아슬아슬
전날 투어회사를 돌며 이곳저곳 물어봐도 대답은 모두 같았다.
'일단 출발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침에 봐야해. 그리고 출발을 해도 산에 도착해서 못 올라가거나 가다가 내려와야 할 수도 있어.'
날씨야 사람이 정할 수는 없는거고, 이 때 미리 환불에 대해서만 확실히 해두면 된다.
출발 전엔 100% 환불, 일단 갔다 못 올라가면 교통비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환불불가로 조건은 모두 같았음.
그렇게 우린 불확실한 날씨를 걱정하며 가장 저렴한 곳에서 장비포함 35000페소에 예약했다.
잠이 덜 깬 부은 얼굴ㅋㅋ 창 밖을 보면 알겠지만 아직 칠흙 같이 어두운 새벽 6시.
도착하자마자 오늘 가능한지부터 물었더니 가능! 기쁘면서도 아 안 되면 그냥 들어가서 자야지 했던 맘에 조금 아쉬웠다ㅋㅋ
일찍 오라고 해서 갔더니 전날 미리 확인해봤으면 되었을 옷과 장비 등을 입고 신고 맞춰보느라 한 시간 이상을 보낸 것 같다.
저렴한 회사라 그런가 뭔가 엉성해;
부족한 거 없이 꼼꼼히 챙겨주긴 한 것 같다.
옷, 부츠, 헬멧, 저거 얼음에 꽂는 막대기 뭐라고 하지? 암튼 그거랑, 가방, 장갑, 기타 등등! (단 점심과 물은 각자 싸가야 함)
다만 옷은 나한텐 다 엄청 커서 힙합바지 같이 다리도 잘 안 벌어지고ㅋㅋ
스키부츠 같은 신발은 첨에 몰랐는데 점점 발과 발목을 압박해오는 통에 얼음으로 된 경사면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게 엄청 고역이었다.
내려와보니 신발과 닿는 발목 부분에 멍이 들어있었다지;
(트렉킹이 하나 끝날 때마다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남아있다. 잉카트렉킹 때 발톱에 든 멍은 4개월이 넘도록 안 빠져 엉엉)
사실 장비체크할 때 우린 몇 분 걸리지도 않았고
우리랑 함께 간 프랑스 부부는 이건 커, 작아, 주머니가 이상해 그러면서 까다롭게 한 시간 내내 입었다 벗었다 했는데
그 땐 좀 대충하지- 싶었다가 내 발이 아파오니 아 나도 꼼꼼히 고를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우린 그냥 주면 주는대로, 안 그런 것 같아도 싫은 소리 잘못하는 한국 꼬맹이들.
추운 날씨에 눈밭 걸을 생각에 엄청 껴입고 신고 갔는데 여기서 빌려준 옷이 통풍이 하나도 안 돼서 어찌나 따뜻한지
돌아올 땐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해 주차장에서 내리면 리프트 탈거야? 하고 묻는다.
리프트는 별도도 7000페소. 뭐 본인이 고집부리면 안 타고 걸어갈 수는 있지만 대부분이 그냥 타고 올라가서 안 타기도 뭐하다.
우린 미리 다른 블로그에서 이 얘길 보고가서 고민없이 그냥 타고 감.
으 추워
꼭 여기가 정상 같지만ㅋㅋ 이제 시작!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픈거 말고는 초반에는 수월한 코스
그래도 가이드아저씨는 안전을 엄청 강조하며 꼭 줄을 서서 여자들이 앞에, 남자들이 뒤에서 따라오게 했다.
우리, 프랑스 부부, 브라질 커플, 칠레 언니 한명 요렇게 7명이었는데 덩치 제일 좋은 브라질 언니 빼고는 다들 잘 걸었음.
돌에 핀 얼음꽃!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풍경
저 위는 까마득하구나ㅠ
쉬면서 미리 새벽부터 준비해간 샌드위치 흡입. 완전 맛있다!
이쯤에서였나, 쉬었다 다시 출발하는데 브라질 언니가 포기해버리심ㅠ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신발에 아이젠도 장착하고 아저씨가 안전에 대해 엄청 겁을 주면서
혹시나 미끄러졌을 때 아까 그 막대기ㅋㅋ를 사용하는 방법을 한참 설명해주셨다. 옆으로 넘어져서 얼음에 콱 찍어야 함.
끄아 경치도 멋지고 얼음 위를 걷는 기분도 좋고 신이 나 있는데!
슬슬 가이드아저씨가 위쪽 날씨가 안 좋아서 정상에 못갈 것 같다고 그러기 시작했다. 헐 뭐야
날씨가 안 좋아서 얼음이 많아 위험하고 가려면 구름이 더 끼기 전에 빨리 가야한다며. 아침부터 시간 끈게 누군데ㅠ
그러더니 이때부터 갑자기 자꾸만 나랑 칠레 언니한테 너네 힘들지? 힘들지? 물어보기 시작한다.
아니 위험해서 못가는 거면 그런거지 갑자기 왜 우리한테-_-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얼음길에서 남자들과 똑같은 속도를 낼 수는 없는거 아닌가-_-
우린 아니 괜찮은데? 하면서 계속 올라갔지만
순식간에 산 위가 구름으로 덮혀버렸다.
그리고 속속들이 위에서 포기하고 하산하는 다른 그룹들이 나타남 흐엉.
날씨 때문에 일주일이나 기다렸다며 꼭 정상까지 가겠다던 몸 좋은 프랑스부부도 여기선 포기.
이런게 화이트아웃인가
사실 난 정상보다 내려갈 때 썰매타고 내려갔다는 다른 여행기 보고 그게 제일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얼음이라 그것도 안 된단다ㅠ 썰매 못 탄게 넘 속상해 엉엉ㅠ
오빠 뒤로 보이는 사람 가방에 매달린 물건은 눈 위에 앉을 때 쓰라고 주는건데
보통 눈이 폭신한 여름에 오면 저걸 엉덩이에 깔고 썰매를 타고 내려갈 수 있게 해주는 듯.
대신 가이드아저씨가 미안했는지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가 않구나!
난 괜찮다고 하는데 아저씨가 팔짱 끼라고 해서 양 옆에 아저씨랑 오빠 끼고 질질 끌려내려옴ㅋㅋ
아마 내가 느려서 그런듯. 뭐 썰매 대신 나름 재밌었다ㅋㅋ
내려오면서 훨씬 잘 걷는 몸 좋은 언니오빠들도 포기하고 가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날씨탓이구나- 하면서 위로가 좀 됐지만
그래도 일찍 출발한 한두그룹은 정상까지 다녀온 것 같아 아침부터 가이드아저씨들이 시간 끈게 조금은 괘씸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상에 가든 못가든 한여름이든 추워서 고생을 좀하든 추천하고픈 트렉킹.
뭐 파타고니아에서의 트렉킹은 전부 다 좋았고! 다른데는 더 좋지만! 여긴 좀 색다르기도 하고 워밍업도 할겸ㅎㅎ
참고로 최근(5월)에 푸콘에 간 친구는 날씨가 좋아 정상까지 다녀온 듯 했음.
잉카트렉킹 때 만난 친군데 트렉킹 직후 쿠스코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첨엔 걷지도 못하고 네덜라드로 돌아갔다가 다행히 두어달 치료 받고 남미로 다시 돌아와 여행중.
우리랑 브라질에서 재회했을 땐 여전히 항생제도 먹고 걸을 때 아파했는데 한달 정도 지나 이 트렉킹에 성공해서 매우 기뻐했당.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런 이야기는 나에게도 힘이 되는듯:)
눈 속은 캔디바!
다시 푸콘시내.
아기자기한 동네가 참 맘에 들었지만 우린 갈 길이 바빠서; 다음날 아르헨티나 산마르틴으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좁고 길쭉해지는 지역이라 이제부턴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지그재그 왔다갔다 하며 돌아볼 예정:)
아기자기한 집들과 길마다 가득가득 피어있는 수국들, 호수마을들 중에서도 가장 예뻤던 동네가 아닐까 싶다.
(아르헨티나보다 덜 상업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