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살이 121314/Canada

[Day 250-279] 오카나간 밸리의 꿈 (Okanagan Valley, BC)

nomadicgirl 2013. 7. 31. 14:10


여행 10개월,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의 마지막 행선지 뉴욕에 왔다.

출발할 때만 해도 여행기간은 1년 정도, 6월이면 유럽에 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린 아직도 여기에 있넹


뉴욕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하루종일 잠만 잤다. 쿨쿨.

아래 위 이동만 해서 동서로 이동으로 생긴 시차에도 적응이 안 되고 그동안 몸고생 마음고생 참 고생고생. 우리가 원해서 하는 고생!



브라질 상파울루에 이어 미국 포스팅을 먼저 해야겠지만 그냥 캐나다 먼저 하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게 된 이유도, 미국 로드트립을 하게 된 이유도 할 말이 많아서.

사실 할 말은 많은데 포스팅 개수는 미국보다 적을 거 같아서ㅋㅋ 그리고 엄마아빠가 록키여행 포스팅을 기다리실 것 같아서ㅋㅋ 




원래는 미쿡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지라 미쿡은 친척, 친구들만 만나고 유럽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꼬망구언니 커플을 만나면서 계획을 변경!


미국 애리조나에서 차를 사서 로드트립을 시작한 우린

5월부터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 유타, 네바다, 캘리포니아, 오레건, 워싱턴, 그리고 마지막으로 옐로스톤까지 찍고! 6월 중순 캐나다에 입성했다.


바로 체리픽킹 시즌에 맞춰서!


체리픽킹으로 여행경비를 좀더 모아 여행을 조금 더 길-게 지속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결과는 우리의 희망과 너무나 달랐지만 하하ㅠ 











이게 지난 3개월간 우리의 사랑스러운 이동수단이자 집이 되어준 랜드크루저, '김치' 되시겠다!

이름은 그냥 빨강이라 김치. 노랑이었으면 단무지가 될 뻔 했다ㅋㅋ


이건 캐나다 캘거리의 한 캠핑장.

옐로스톤을 거쳐 북쪽으로 향해 캘거리에 잠깐 들러 진짜 김치ㅋㅋ와 한국 식재료를 장만하고 다시 서쪽 오카나간 밸리를 향해 달렸다.


미쿡보다 푸르른 자연과 막연히 뭔가 더 인간적이고 맘에 들 것 같았던 캐나다.

하지만 이곳에 여행자 신분으로 잠시 스쳐가는 우리에게 캐나다는 가혹한 물가로 단번에 미움을 샀더랬다.

미쿡이랑 똑같은 물건인데 뭐 이렇게 비싸니 엉엉ㅠ











입이 쩍 벌어지는 록키산맥은 잠시 뒤로 미루고 체리 고고씽!










중간에 하루 묵었던 레블스토크의 캠핑장









캘거리에서 사온 떡으로 떡꼬치









떡볶이도 먹고 이 땐 참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ㅋㅋㅋ










꼬망구언니네한테서 대강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농장지역에 도착하니 막막 그 자체.

오후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농장에 사람도 많지 않고 그냥 무작정 과일가게, 농장주인이 살 것 같은 집문을 두드려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차가 있으니 그나마 이렇게 돌아다니지 차 없으면 이것도 쉽지 않을 터.


아직 시즌이 한창 시작되기 전이라 나중에 전화하라며 명함을 주던 농장주들.

하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올해 이곳 오소유스와 올리버는 봄에 한파가 닥쳐 체리농사가 완전 흉작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띠로리...


체리가 별로 없으니 예년보다 픽커도 조금 필요하고, 기왕이면 경험자가 우선이니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운 좋게 하루 이틀 일할 곳을 찾아도 나무에 체리가 없으니 박스 채우는 속도는 오르질 않고

이걸 어찌해야 하나 그냥 나갈까 계속 남아서 따볼까 고민되던 나날들.


대부분의 농장주는 인도사람들.

하나같이 이틀 후에 전화해! 이런 식으로 자신있게 말해놓고 전화하면 전화도 안 받아, 받아도 일 없다고 갑자기 발뺌해버리는 공통점이 있었다.

뭐 편견을 갖고 싶진 않지만 앞으로 인도사람 말 잘 못 믿을 것 같다ㅋㅋㅋ












그러던 와중에 차에서 발견한 얼마전 미쿡 포츈쿠키에서 나온 메세지

참고 기다리면 좋은 일이 생길거야- 정말?











대부분 농장에는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다.

매번 이 농장 저 농장 떠돌던 초반, 오소유스 공원 화장실에서 씻고 밥 해먹고 공짜물 떠다 쓰고 그랬던 정말 처량했던 신세.


아아 다시 봐도 우울하당ㅋㅋㅋ


이 주변엔 우리보다 더 대충하고 다니는 퀘백커(원래 체리시즌에 가장 많이 찾아오는게 퀘백커들이다), 히피들이 꽤나 모여들었는데

이상하게 불어쓰는 히피들은 좀 무서웠음ㅋㅋㅋ










그 와중에도 먹는건 열심히!라기보다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매일 살 수는 없고 캘거리에서 사온 식재료 처리하느라ㅋㅋ


하지만 진짜 꿀맛이었던 김밥!:)















자꾸만 비가 내려서 그나마 있는 일도 못 하는 날이 많았다 헐ㅠ

비가 와서 텐트보단 차에서 자는게 편했는데 가끔씩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물이 새어들어와 말리느라 또 고생ㅠ










어디서든 전망 하나는 정말 끝내줬던 우리 김치집 창:)

두 사람 누워서 다리도 못 펴는 공간이라지만 나름 우리의 첫 집, 지난 3개월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을 조금이나마 느끼면서

지금도 이렇게 속상한데 이게 정말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면 마음이 얼마나 더 힘들까, 세상에 정말 쉬운 일 없구나, 이런 대화들을 나누던 나날들.













일주일쯤 지나서였을까 올리버로 이동해 드디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다!


우리가 캠핑했던 농장은 우리를 고용한 인도아저씨 말고 이 아저씨한테 농장을 대여해준 다른 포르투갈 아저씨의 집앞 농장 

널직하니 시원한데다 친절한 포르투갈 아저씨가 마련해준 화장실에 햣사워도 가능! 천국이 따로 없다! 감격의 눈물 또르르.











모닥불 피우라고 장작나무도 수레 통째로 가져다주시고










허름하지만 샤워실










오빤 별로라고 했지만

햇살 맞으며 바람소리 들으며 나무를 바라보며 하는 샤워가 난 좋았다.












유난히 높은 사다리를 많이 타야했던 픽킹

어떤 나무를 가진 농장인지 꼼꼼히 살피고 선택하는게 중요한데

워낙에 흉년이었던 올해는 나무 높이도 높이지만 체리가 그나마 많이 열렸는지가 관건이었다.


예년 같으면 한 나무에 5-10박스씩 따고 그랬다는데 올해 수확량은 작년의 20%도 안 된다고 하는데다

진짜 구린 농장에 가면 한 나무에 한 박스도 안 나오고 잎을 헤치고 체리를 찾아야 할 판이었으니 말 다했지.


우리의 수입도...흑흑












나는 높은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는 걸 꽤나 무서워라 했는데 그러다가도 바람이 쏴아아- 불어올 때면 그 시원한 느낌이란!
























체리물을 말할 것도 없고 양손에 남은 엄지와 검지 굳은 살, 팔이 너무 저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오십견 환자분들 고통을 제대로 알겠다고 했더니 오빠가 막 부러워했음ㅋㅋㅋ











이런 박스에 5달러.


우리 농장은 박스가 약간 큰 대신 꽉꽉 채우지 않아도 되서 좋았는데

따기 쉬운 라핀시즌이 되자 자꾸 더 채우라고 잔소리를 해서 서로 신경이 곤두서곤 했었다.


우리와 함께 픽킹하던 몬트리올에서 온 프란세스는 영어 못하는 인도 할아버지한테 막 열받아서 소리 지름ㅋㅋ 

그럼 돈을 더 줘야할거 아니야! 막 이러면서ㅋㅋ


어느 농장이나 비슷한 패턴.

영어 못 하는 이민 1세대 할아버지와 지금 현재 농장을 운영하는 아들, 그리고 여기서 나고 자란 영어 잘하는 초딩 손녀손자들.

그리고 처음 이민와 살던 작은 집 옆에 딱 봐도 새로 지은 무지무지 큰 (별로 안 좋아보이는데 대리석 비스무리한 번쩍거리는 재질의) 집ㅋㅋ











새벽 4-5시에 일어나 정말 눈꼽만 떼고 픽킹 시작

12-1시에 일 끝나면 샤워하고 기절해 자다가 카페 가서 인터넷하고 장봐서 돌아와 저녁 해먹는 생활의 반복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노동하고 땀 흘리는 상쾌한 기분, 일 다 끝내고 자는 꿀잠, 

하루 한 끼 해먹는 재미도 재미지만 우리가 하고도 정말 꿀맛이었던 저녁식사.

언젠가 한번쯤 오빠와 함께 해보고 싶었던 슬로우 라이프였다.


첨엔 그냥 나가서 알래스카를 갈까도 했었는데 맘 편한 슬로우 라이프 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자연스레 사라졌다.
























디저트는 싱싱한 체리

















한 박스에 8달러 주는 레이니어.

조심조심 멍 안 들게 따야해서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리는 귀하신 몸.

제대로 못 따서 7달러 받았지만ㅋㅋ 이렇게 맛있는 체리가 있다니! 직접 딴 레이니어를 먹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나중에 미쿡 내려와서 시장에서 사먹어도 봤는데 맛이 영, 퀄리티도 영 다르더라.













커피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있던 팀홀튼











이곳 오카나간 밸리 과일로 만든 cider

맛은 있는데 역시 과실주라 그런지 뒤끝이 정말 안 좋다ㅋㅋ


















모기와의 전쟁











우리의 슬로우 라이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동료 픽커들!

퀘백 히피들과 일할 때는 애들이 약간 술 취한듯 소리지르고 그래서 힘들었는데ㅋㅋ

몬트리올에서 온 프란세스와 메리 남매는 다른 애들과 달리 아주 정상적이고ㅋㅋ

일본인 젠타와 이스라엘리 마가렛은 뮤지션이라 매일 기타 치고 드럼 치고 노래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잘 몰랐던 캐나다 이야기도 듣고 언젠가 이스라엘리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지만 민감해서 못 물어보던 질문들도 맘껏 했던 시간들



















7월 중순, 어느덧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이곳 올리버에는 복숭아와 사과 시즌을 향한 기다림만 남았다.

다른 친구들은 체리시즌을 따라 북쪽과 크레스톤으로 떠나고 (올해 오카나간 밸리 남쪽만 흉작이고 북쪽은 나쁘지 않다고 들었음)












우린 밴프여행을 위해 한국에서 오시는 부모님 만나러 가던 마지막 날

아직 덜 익은 복숭아 나무 아래 미리 떨어져버린 복숭아들 한아름 주워다가 나눠먹었다. 우리가 직접 딴 체리와 함께:)
















돈에 눈이 멀어 여기까지 왔다가 망했다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돈보다 더 귀한 가치들을 느끼게 해준 체리픽킹.

제대로 된 나무에서 실력발휘를 못해본 건 지금도 너무너무 아쉬운데, 다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