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살이 121314/Poland

[Day 383-385] 폴란드 속으로, 우쯔(Łódź)

nomadicgirl 2013. 11. 29. 18:34



우쯔(Łódź)


아우슈비츠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남쪽으로 한시간 반 정도. 우쯔 국립영화학교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도시. 

우리가 또 한번 이렇게 듣도보도 못한 도시에 온건 바로 폴란드 친구 클라우디아를 만나기 위해!


클라우디아는 작년 12월 쿠바 아바나에서 만났다. (여전히 빈통으로 남아있는 쿠바폴더ㅠ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한 쿠바ㅠ)

쿠바는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이주당한ㅠ) 아프로쿠바노들만의 독특한 음악과 춤 문화가 최고!

낮에도 다양한 공연이 있지만 특히나 밤이면 도시 곳곳 클럽에서 멋진 공연이 열린다.

하루는 우리도 공연을 보러 아바나의 한 클럽을 찾았고, 바로 그 곳에서 클라우디아를 만났다.


클럽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클럽 앞은 인산인해

그 와중에 직원들은 따로 웃돈을 받아챙기며 순서에 관계없이 돈을 더 내는 사람들만 입장을 시켜주고 있었다-_-

(지금 자세한 이야기를 쓰긴 힘들지만 우리가 경험한 쿠바는 아이러니하게도 돈으로 다 되는? 자본주의의 이면을 매번 실감하게 하는 나라였다)

암튼 정신없는 와중에 우린 뭐야 이러다 못 들어가는거 아냐?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 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클라우디아.


쿠바여행이 두번째였던 클라우디아는 여유가 있었다. 

사실 여행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오직 아바나에만 몇주씩 머물며 살사를 배우고 공연을 보는 매니아!

살사가 처음인 우린 클럽에서도 자리에 앉아 보는게 다였지만(쿠바노 오빠들이 부추겨서 추긴 좀 췄다ㅋㅋ 오빠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라우디아는 무대 앞에서 음악에 맞춰 살사를 추고 공연하는 밴드 맴버부터 음악과 춤의 장르 모르는게 없었다.

우린 모르고 갔는데 이날 공연한 밴드도 꽤 유명한 밴드라 일부러 보러 왔다고 했다. 

(근데 이날 카메라 메모리 빼놓고 카메라만 들고 가서ㅋㅋ 사진이 한장도 없다ㅠㅠㅠㅠㅠㅠ)


암튼 이게 인연이 되어 다음날도 클라우디아가 알려준 공연을 보러 갔다가 또 만나 같이 말레꼰 걷고 밥 먹고 이후에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거의 1년 만에 폴란드에서 감격적인 재회!










아우슈비츠에서 우쯔까진 3시간 거리라고 나와있었지만 도로가 워낙 구리고 차가 엄청 막혀서 4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것 같다.

우쯔만 아니면 바로 다시 체코로 쏠텐데 이거 때문에 너무 돌아가는건 아닌가 후회가 밀려올 뻔도 했지만

역시나 독일에서도 그랬고 이탈리아에서도 그랬고 일단 친구를 만나고 나면 멀어도 찾아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창 밖을 보며 기다리고 있던 클라우디아. 

이게 얼마만이냐며 서로 신기해하면서 클라우디아가 차려준 간단한 폴란드식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 밀린 회포.

클라우디아의 쿠바사랑은 엄청났는지 그 사이 쿠바노 남자친구도 생겼다는 빅뉴스까지!


폴란드 가정식 저녁은 독일에서 먹던 것과 비슷했다. 

간단히 빵과 햄, 치즈. 주로 점심을 많이 먹고 저녁은 가볍게.









공산주의 시절 지어놓은 아파트가 많아서 참 오랜만에 한국처럼 아파트 많은 나라에 온 것 같았다.

11월에 접어들고 있던 나날. 이 때쯤 되면 날씨가 많이 변덕스럽고 갑자기 추워지곤 한다는데 우리가 있는동안은 완전 포근, 럭키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햇살이 따스해도 똑같은 시멘트 색깔 아파트들이 늘어선 거리풍경은 꽤나 암울했다.










 여긴 딱 재개발 안 한 반포 느낌!









사실 클라우디아만 아니면 우쯔는 정말 볼게 없는 도시였다.

전쟁 전에는 직물산업으로 한때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빈 공장과 오래된 건물만 남은 침체된 도시.

클라우디아가 우릴 데려간 곳은 그 오래된 공장터를 개조해 쇼핑몰처럼 만들어 최근에 핫플레이스가 되었다는 마누팍투라.


체제변환 이후 외국 기업과 자본이 들어오면서 자국 산업은 대부분 무너지고 실업률이 엄청 증가했다는 폴란드.

이곳도 프랑스 기업에서 들어와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과거 직물산업이 번성할 때 대부분 공장은 유대인 소유였고 여긴 그 마누팍투라 공장주가 살았던 으리으리한 집이다.

도시가 잘 나갈 때도 대부분의 자본가들은 유대인 아니면 독일인, 러시아인. 어쩐지 불쌍해지는 폴란드;









우리의 방문은 클라우디아 뿐 아니라 클라우디아 가족들에게 꽤 재미난 이벤트였던 것 같다.

살면서 세계일주하는 애들 첨 본다며 만나보고 싶다고 클라우디아 아빠가 나오셨다ㅋㅋ

오늘의 찍사가 되어주시겠다며 사진을 엄청 찍어주심. 뒤로 보이는건 마누팍투라에 붙어있는 부티크 호텔이당.









예전에 배에서 일을 하셨다는 클라우디아 아빠는 나이에 비해 영어를 엄청 잘 하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여긴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놀러다니던 동넨데  저 마누팍투라가 생긴 다음부터 사람이 없어서 문도 많이 닫고 휑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여행할 자유가 생겼지만 일할 곳이 없고 여행할 돈이 없다며

일자리가 없어 외국으로(특히 영국으로 많이) 떠나야 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부럽지만은 않다고 말하던 아저씨 얼굴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아저씨가 일하던 곳을 포함, 폴란드에는 3개 정도 큰 선박회사가 있었는데 체제변환 이후 하나씩 사라졌다고.

배를 타고 세계를 누볐던 과거의 경험 덕분인지 아는 것도 많고 지금도 사진과 여행에 관심이 많지만 할 수 없어서일까,

만나본 사람 그 누구보다 우리 여행에 흥미를 보이고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준 아저씨였다.


쿠바에서 클라우디아를 만났을 때는 그냥 유럽에서 온 여행자구나- 생각했는데 우쯔에 와 아저씨를 만나고 동네를 보고 폴란드의 사정을 듣고 보니 

폴란드에서 클라우디아처럼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특히나 폴란드는 종교가 강해서 엄청 보수적이라 바로 옆동네 체코와 비교해도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유럽은 유럽인지라 어딜가나 문화예술공연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 그거 하난 정말 부러웠다.

사진 가운데 기둥에 붙어 있는 공연광고들- 저 중에 내가 좋아하는 베이시스트 리차드 보나! 이런 곳까지!

뭐 빠리나 빈 이런 곳은 말할 것도 없고 폴란드, 체코 여러 도시 곳곳 문화예술공연이 늘 가득하더라.











우쯔 출신 유명한 시인. 이 사람도 유대인이라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ㅠ










거리 곳곳 이 사람 동상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세워져 있다.










버려진 공장건물 한편,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공간.










의외로 예쁜게 넘 많아서 쇼핑을 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클라우디아와 아저씨 속도에 따라 휙 보고 나왔다 흑.















출출해서 아까 그 마누팍투라 푸드코트로. 뭐 먹고 싶냐기에 당연히 폴란드 음식!이라고 답했는데 푸드코트에 폴란드 음식이 하나도 없다-_-

햄버거 치킨, 다 그런 패스트푸드들, 미국 국기가 커다랗게 그려진 음식점들 하며 옆에 있던 영화관은 대부분 헐리웃 영화. 

폴란드는 둘째 치고 근처 유럽 것도 많지 않고 다 미국꺼다-_-


전쟁 중에는 완전 독일이랑 소련 사이에 끼여서 치이고 전쟁 후에는 강대국들 맘대로 정한 조약 때문에 국경이 바뀌고 

(사람들은 보통 독일땅을 폴란드에 내어준 것만 기억하지만 그건 폴란드 동쪽땅을 소련에 주는 대신에 받은 땅이다. 

그 동쪽땅에 살던 사람들은 그냥 졸지에 국적이 바뀌거나 이주해야 했던 것)

체제변환 이후에는 뭐 다른 나라들도 그랬겠지만 순식간에 밀고 들어온 외국, 특히 미국자본에 나라가 휘청거리고.

슬픈 나라였어 폴란드ㅠ









결국 먹을건 없어서 근처 오래된 전통의 초콜렛 카페.

초콜렛 좋아하는 오빠가 이거 먹고 싱글벙글해하니 클라우디아가 엄청 재밌어 했다.

오빤 평소 표정으로 감정이 잘 안 드러나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신기하다고ㅋㅋ


카페에 앉아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은 코리안스똬일로! 사실 코리안스타일은 아니고 아시아퓨전으로ㅋㅋ

오전에 장 보러 갔다가 마트에서 월남쌈 재료를 보고 둘이 흥분해서 메뉴를 밥과 불고기 그리고 월남쌈으로 해버렸다ㅋㅋ

결과는 불고기만 완전 인기고 월남쌈은 우리 둘이 다 먹은 듯 하하-_-









저녁 먹고는 그동안의 여행사진을 함께 봤다.

클라우디아는 정말 우리 여행이야기를 너무 재밌어 해서? 멕시코부터 유럽까지 모든 사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헉헉. 이런 사람 처음이야ㅋㅋ

우리 블로그 주소도 알려줬는데, 다른 외국 친구들은 보통 사진만 보고 말지만 아마 클라우디아는 이거 구글 번역기 돌려서 보고 있을거다ㅋㅋ

미안해 영어로 못 써서ㅋㅋ


아저씨는 이스터섬 사진을 너무 좋아하셔서 사진도 몇 장 드리고.

오빠 얼굴이 빨간건 클라우디아가 준 폴란드 특산 '꿀 와인' 너무 많이 마셔서ㅋㅋ









짧았던 주말을 그렇게 휙 지나가버리고 마지막 아침.

우리에게 폴란드 대표음식을 보여주지 못한게 맘에 걸렸는지 아침으로 폴란드식 감자팬케잌을 만들어준 클라우디아.


만드는 방법이 감자전이랑 거의 비슷한데 밀가루랑 계란이 들어간다는 점, 구워서 사워크림이랑 같이 먹는다는 게 조금 다르다.

전부터 오빠가 감자전 노래를 불렀는데 감자 가는 강판이 없어서 그건 못해먹어 하다가 비슷한 감자팬케잌을 만나니 오빤 또 해피해피.


아무리 잠깐이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면 그곳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다.

뭔가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왠지 좀 안타까운 맘이 많이 들었던 폴란드라는 나라. 더 알고 싶어지는 나라.


Thanks, Klaudia. Best wishes to you and your family!


유럽에 와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던게 뭔가 아쉬워지는 순간. 특히나 폴란드 바로 옆나라 벨라루스를 두고 다시 서쪽으로 향해야 한다니ㅠ

페루에서 만났던 벨라루스 친구들이 초대를 했지만 비자비도 비싸고 리스차가 커버되지 않는 나라라 다음 기회로 미뤘는데 

막상 바로 폴란드까지 왔다가 안 보고 가려니 더 아쉬웠다. 인터넷으로 냉면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먹는 벨라루스 친구들ㅠ

다음에 발트 3국이랑 묶어서 가볼테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