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32] 사파리 둘째날, 머나먼 세렝게티 가는 길.
사실 사파리 포스팅 한번에 묶어서 해버리고 싶은데 사진이 너어어무 많다ㅠ
암튼 둘째날, 오늘은 머나먼 세렝게티까지 이동하는 날.
구글에서 퍼온 지도를 참고하자면 동쪽에 우리가 출발한 마을 아루샤가 있고
(그 동북쪽은 킬리만자로의 거점 도시 모시도 있지만 너무 비싸서 이번엔 포기ㅠ 진짜 너무 비쌈ㅠ)
남쪽으로 전날 갔던 타랑기레, 다시 그 북서쪽으로 레이크 만야라와 응고롱고로, 세렝게티.
투어마다 가는 곳은 비슷해도 그 일정은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가도 세렝게티 이동에 하루는 다 보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원래 벤슨이 추천한 투어는 세렝게티가 머니까 간 김에 3박 4일 중 세렝게티 만 이틀, 응고롱고로 하루 이렇게 보는 거였는데
우린 첫날 타랑기레, 둘째날 세렝게티까지 이동, 셋째날 세렝게티 보고 응고롱고로로 나와서 넷째날 응고롱고로 보고 돌아오는 3박 4일.
(그 중 4박 5일 신청한 애들은 하루 더 남아 레이크 만야라까지)
국립공원은 몇 시에 들어가든 들어간 시점부터 24시간, 그러니까 만 하루로 입장료를 계산한다.
흥정할 때 투어회사에서 정확한 시간 설명 없이 마치 세렝게티에서 자고 나오면 이틀치 입장료를 내는 것처럼 생색내는건 다 거짓말이란 말씀!
사실 둘째날은 시작부터 기분이 영 별로였다.
전날 저녁에 독일아저씨가 우리 보고 "너네 자리 바꿔서 둘이 같이 앉지 그래?" 라고 얘길하길래 (그룹에서 우리만 커플, 나머진 모두 개별여행자)
안 그래도 차 구조상 앞에 두줄보다 뒷자리가 훨씬 불편했던터라 "그래. 어차피 우리 매일 자리를 바꿔 앉는게 좋지 않을까?" 했더니
옆에 있던 독일아가씨 스테파니가 "맞아. 똑같은 자리에 앉는건 불공평해!"라고 맞장구를 쳐서 내일부턴 오빠랑 같이 앉아 가겠군- 생각하고 잤다.
그런데 막상 다음날 아침이 되니 다들 슬슬 눈치를 보며 원래 자리에 앉으려고 해서 고민하다 내 앞자리 스페인아저씨한테
"나랑 자리 바꿔줄 수 있어?" 물었더니 그러자고 해놓고 짐 싣고 어수선한 사이 독일아저씨랑 둘이 자리를 바꾸고는 자기는 제일 편한 앞자리에 앉고
내가 앉으려던 자리엔 독일아저씨가 앉아서는 "나 저 스페인 애랑 바꿨어. 넌 다른 사람 하고 바꿔." 이러고 있다-_-
어제 불공평하다며 큰소리 치던 스테파니는 일찌감치 상황파악하고 자기 앉았던 제일 편한 앞자리에 앉아서 바꿔달라고 할까봐 눈도 안 마주치고 헐.
드라이버가 빨리 출발해야 된다고 재촉은 해대고 짜증은 나는데 여기서 더 말하면 왠지 나머지 날들 동안 분위기가 애매해질 것 같은 느낌-_-
결국 오빠가 일본인 타카한테 부탁해서 타카가 조수석으로 가고 내가 타카 자리로, 오빤 내 자리로 앞뒤로 앉아 가게 됐다.
사실 게임 드라이브는 차 안에서 보는거라 자기 창문 방향이 아니면 사진 찍기가 좀 힘들기 때문에
우린 둘이 같은 방향에 앉아서 반대쪽에 있는 동물 사진은 거의 찍지도 못했다는거. 이게 모야!
화창한 하늘 아래 마을들을 지나
세렝게티 전에 지나가야 하는 응고롱고로 입구에서 등록절차를 마치고
뷰포인트에서 내려다 본 응고롱고로 분화구!
구름이 많아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런대로 또 다른 신비로운 자태, 아름답다!
지도를 눈여겨 봤다면 알겠지만 다른 국립공원들은 '국립공원'이지만 응고롱고로는 국립공원이 아닌 '보호구역'
수많은 동물들 뿐 아니라 마사이족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그러다 보니 차로 달리다 보면 이렇게 사람 사는 마을도 보이고
야생동물도 보이고
세렝게티에서 건기와 우기가 바뀌는 계절마다 대이동의 장관을 선물하는 누(gnu).
근데 어찌나 겁이 많은지 먼 거리에서도 차만 보이면 정말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미안했다.
다른 애들은 이렇게 도망 안 가는데ㅎㅎ
가는 도중 마사이 마을 투어는 옵션.
이렇게 관광용 마을에 돈 주고 들어가서 구경하는거 정말 싫어하는데 입장료는 차 한 대당이라 7명이 나누면 싸다고 꼬시는 말에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다고 하니 빠지기 애매해서 그냥 오케이. 왜 싫다고 말을 못해! 왜!
영어를 엄청 잘 하던 마을대표 청년. 웃으며 인사하고 들어가기 전 돈부터 꼼꼼히 걷어가셨다.
그나저나 저 귀에 엄청 큰 구멍은 신기하긴 하더라.
소똥으로 만든 전통 가옥.
환영의 의미인지 노래를 부르며 한 명씩 높이 뛰어오르는 전통 의식을 보여주고
끝나기가 무섭게 두 명씩 맡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이 시츄, 뒤에 어떤 순서가 이어질지 잘 알기에 이미 불편한 마음.
외우고 있는듯 익숙하게 이 집과 자신들의 삶을 짤막하게 소개하고 나가서 기념품을 강권하겠지 흑.
집 내부는 사진보다 훨씬 어둡고 빛이 새어들어오는 작은 구멍 말고는 공기가 통할 곳이 거의 없다.
이 안에서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고 다 하는데, 그 일을 해야하는 여성들은 앉아서 그 연기를 그대로 다 마셔야 하는 구조.
아프리카 많은 부족들의 전통가옥에서 이런 여성들의 건강문제가 발생하는데 물론 그걸 인지하게 되는 것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마사이 사람들의 또다른 패션 포인트, 이 가죽신발.
가격 봐서 악세서리 몇 개 사볼까 했지만 정말이지 터무니 없는 가격에 혀를 내두르고 차에 올라타 다른 사람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관광객들이 이렇게 들러서 돈 내고 기념품 사가는 것 외에 딱히 수입이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래서 더 불편한 마음.
산업화된 나라들과 아프리카 사이의 차이도 존재하지만 이 나라 안에서도 종족 간의 괴리, 전통과 현대의 괴리가 존재한다.
아루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는 마사이 사람들처럼 (옷과 생김새로 바로 구별이 됨).
이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삶과 바꾸고 싶은 삶의 방식은 뭘까.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은 어떤 걸까, 그 교육으로의 접근은 언제쯤 가능할까.
역시나 이러고 나면 찝찝한 마음으로 머리는 더 복잡해진다니까. 왜 싫다고 말을 못해! 왜!
다시 세렝게티로 고고. 근데 왜 이렇게 비가 오니ㅠ
사실 11월부터 세렝게티는 우기에 접어든다. 하지만 대부분 소나기처럼 가볍게 지나가는 비고 사파리가 힘들 정도의 비는 3-4월이라고 들었는데
우리가 있는동안 세렝게티는 매일 울고 있었다. 것도 엄청 심하게.
근데 문제는 우리 차도 울고 있었다는거ㅠ 하늘도 울고 차도 울고 우리도 울어 엉엉ㅠ
안 그래도 아침부터 자리 때문에 짜증났는데 오빠가 앉은 맨 뒷자리에선 비가 줄줄 새기까지 했다.
너무 심해서 수건으로 막고 있어도 수건이 다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질만큼-_-
탄자니아는 운전석이 반대라 차가 도로 왼쪽에서 달리는데 (도로라고 해봐야 대충 닦인 그냥 흙 도로)
도로가 좁으니 차는 계속 왼쪽으로 기울고 왼쪽 맨 뒤에 앉은 오빠 자리로 물이 줄줄줄. 오빤 앉은 채로 몸의 절반이 다 젖어버렸다.
그렇게 매우 빡친 상태로 도착한 세렝게티. 당시의 오빠의 빡침게이지는 역대 최고급으로 온몸으로 분노오로라를 발산하고 계셨다.
우리가 이것 때문에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세렝게티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이럴거 같았으면 하루 20불 더 내고 좋은 회사를 고를걸 그랬나.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우린 싼걸 고르겠지. 하루 20불*4일*2명이면 크헉.
돈도 돈이지만 확실히 그룹 사람들이 별로였던게 보면서 다들 모른 척하고 다음날 자리 바꾸자는 말도 안 하고.
진짜 어이없었던 게, 뒷좌석 쪽에 놓은 가방들이 막 젖어서 뒤에 앉은 중국인 국위가 바닥에 깔 무언가를 찾고 있었더니
스테파니가 남는 박스를 하나 줬다가 조금 후에 갑자기 자기 써야 된다고 빼앗아 갔다. 응? 얘 모니 진짜.
나 같으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국위는 별 말도 없고 매일 맨 뒷자리에 앉아서도 별 불만이 없는 눈치.
약삭 빠른 유럽인들 틈에서 뭔가 아시아인들만 손해보는 기분은 나만 드는 건가 흠.
점심 먹었던 세렝게티 인포센터. 세렝게티에서는 이런 새들이 동네 참새만큼이나 흔하다.
예전에 남부 아프리카 여행 때도 동물들을 참 많이 봤지만
이번만큼 코끼리들이 기다란 코와 입과 상아를 이용해서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유심히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몇 번을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코끼리 아저씨.
코끼리 아저씨는 진짜 코가 손이래!
잠깐 비가 그치면 이렇게 아름답다가도
우중충 빗 속에서 보니 얘는 꼭 무슨 옛날 베트맨에 나오는 악당 같다 큭큭.
세렝게티에 오자마자 사자!
사자들은 늘 누워서 잠만 자는데 나름 일어서 주시기까지!
저렇게 기지개를 펴고 옆에 있는 암컷에게 다가가 해피타임.
해피타임만 보이면 미친듯이 셔터를 누르던 사람들. 왜 이렇게 짧게 끝나냐며 아쉬워 하고.
우린 어차피 줌도 없고 그거 찍어 뭐하나 싶기도 하고.
하품 한 번 시원하게 하는고만!
ㅋㅋ
진짜 귀여운건 꼬마 사자들!
귀엽지만 같이 놀면 죽겠지?
오른쪽 꼬마는 사람이 버린 페트병 물고 한참을 놀고
비가 와서 사진은 요따구지만 비가 와서 진짜 대박이었던 건 누떼의 대이동!
대이동은 시즌이 지난 줄 알았는데 마침 지금(12월)이 한창 케냐에서 탄자니아 쪽으로 이동을 하는 시즌이라며!
크어어. 더 대박은 내일!
빅5 중 하나인 버팔로. 표정 완전 귀여워ㅋㅋ
멀리서 보면 다 귀엽지만 사실 얘넨 좀 무서운 녀석들
이렇게 빗 속 사파리를 마치고 캠프사이트로 이동.
참 별로인 그룹이었지만 밤이면 할 일이 없었던지라 저녁 전후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물어볼 수 있어서 좋은데 이기적인 단기여행자 타입의 유럽인들은 흥미없고
가장 신기했던 건 페루 이후 여행에서 두번째로 만난 중국인 배낭여행자 국위.
원래 중국어로는 '구어위'로 발음해야 되는데 국위도 내 이름을 바로 '쑈우쩐'이라고 중국식으로 불러서ㅋㅋ
사실 국위는 친구뻘은 아니고 삼십대 중후반 아저씬데 그 나이에도 중국 부모님들은 자식 걱정이 엄청 많아서
부모님한테 싱가폴에서 일한다고 뻥치고 3개월째 중동과 아프리카를 여행중이었다.
국위가 우리한테 제일 처음 한 질문도 "너희 부모님은 너희가 여행하는 걸 알아?" 였다. 아 중국 신기해ㅋㅋ
이에 반해 세계일주 중인 일본인 타카는 자기네 가족은 자기 여행에 관심 하나도 없다고 하고ㅋㅋ
영어가 잘 안 되는 국위였지만 나름 한자와 국위 사전으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 근데 나 고등학교 중국어과 나왔는데 중국어 한 마디도 못 함ㅠㅠ
나는 베이징 출신 국위에게 티벳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기도 했고
국위는 평소 한국영화를 엄청 다운받아 본다며 자기가 봤던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러다 80년대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이야기가 나왔고 옆에서 듣던 타카가 궁금해해서 스토리를 대충 설명해줬더니
당연히 바로 돌아오는 질문은 "그래서 그 사람 지금 어떻게 됐어?" "잘 살고 있어." "아니, 어떻게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잘 살아?"
뭔가 낯 뜨겁게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