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살이 121314/Colombia

[Day 534-539] 한 번 더 라틴아메리카, 콜롬비아 보고타(Bogota)

nomadicgirl 2014. 4. 5. 06:48



인간이 편안함에 적응하는 속도나 나처럼 기억력 나쁜 인간의 망각의 속도는 실로 대단하다.

1년 4개월을 여행하고 한국 미국 합쳐 7주 정도 있었나? 그 사이 이전의 인터넷 속도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흐아아 느리구나 느려ㅠ







콜롬비아 보고타.


처음 세계일주를 시작했던 라틴아메리카. 당시 중남미 계획에는 콜롬비아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멕시코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고 남쪽으론 이스터섬 항공권 날짜가 다가오고 있고. 그렇담 콜롬비아 건너뛰고 바로 에콰도르로?

그렇게 콜롬비아를 건너뛰었는데 여행하며 만난 친구들은 자꾸 콜롬비아가 그렇게 좋다고 하네. 

아놔 다시 갈까?


다시 중남미행을 결정하면서 그나마 금전적인 압박을 덜 수 있었던 건 마일리지 항공권 덕분이었다.

마일리지는 공제돼도 일단 나가는 현금이 적으니 조삼모사일지라도! 

더구나 올해 6월이면 스타얼라이언스 한붓그리기 규정이 바뀐다하니 그 전에 써버리자구!


또다시 미국을 시작으로 뉴욕 - 보고타 - 파나마 - (오픈조) - 멕시코 시티 - 피닉스가 이번 한붓그리기 여정 되시겠다.

처음엔 미국 서부에서 보고타로 쏘려고 했는데 말도 안 되는 경유지에 경유시간이 나와서 보고타행 직항이 많은 동남부 중 뉴욕으로.

하지만 당시에 가능한 직항은 이른 아침 뿐. 새벽 이동이 귀찮은 우린 전날밤에 공항노숙을 하려고 했건만 

친절한 사촌언니부부가 부득불 다음날 새벽에 공항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편히 자고 새벽에 출발! 고마워 언니!


하지만 새벽에 출발한 노력이 무색하게 비행기는 무한 딜레이.

가뜩이나 말레이시아 항공 실종으로 뒤숭숭한데 불안하게.


라운지에서 새우잠 실컷 자다가 다소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는데 와우 비행기부터 이미 라틴아메리카!

여기저기 들려오는 반가운 언어에 마음이 사르르. 


"mi corazon!" 

번역하면 대충 내 사랑! 허니! 뭐 이정도 느낌인데 직역하면 꼬라손은 심장, 자기 연인을 부를 때 내 심장아! 하는거다.

이런 정열적인 라틴 사람들 같으니ㅋㅋ


남미를 떠난 지가 어언 11개월이나 지나서 (벌써!) 스페인어 다 까먹었을까봐 걱정했는데

듣던대로 콜롬비아 사람들 발음도 아주 정확하고 속도도 느리고, 내가 말하는건 둘째 치고라도 듣는건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편하다.


콜롬비아 사람들 뿐인 비행기에 동양인 타니 승무원 아저씨는 어떻게 한국 사람들인 줄 알았는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첨엔 이게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건지 발음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서 "잉여하세요"로 들렸다.


네, 저희 또 잉여하러 갑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머리가 띵-

참 오랜만에 고산이다.


고산에 한번 적응하고 나면 그 다음에 갔을 때 괜찮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번엔 전에 키토로 들어갔을 때보다 오히려 두통이 심한 느낌.

첫날은 코가 꽉 막혀서 잠도 잘 잘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은 고산이라도 컬러풀한 건물들 덕분인가 동네 분위기는 훨씬 밝고 경쾌.

콜롬비아에 오기 전까진 에콰도르랑 비슷한 느낌이려니- 생각했는데 

태평양만 접하고 있는 남미의 나라들이랑 태평양 대서양을 모두 끼고 있는 콜롬비아는 분위기도 사람들 얼굴도 모두 완전 다르다.








사진 속 정면의 노란 건물이 우리의 숙소 sayta 호스텔.

한국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 남미에서 이렇게 한국사람을 많이 본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숙소의 질이나 편안한 수면 측면에서 그리 뛰어난 곳은 아니었는데 주인 가족의 무심한 듯 챙겨주는 편안함에 한국사람들이 더 끌리는건지.

아기자기한 candelaria 지역에 위치 하나는 참 좋은 곳이었다.







원래는 보테로 미술관 말고는 딱히 보고 싶은게 없던 보고타라 쉬엄쉬엄 3일 있다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우리가 가고 싶던 커피농장이 이동방향과 달리 남쪽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번에 우린 북쪽으로 쭉쭉!) 

커피는 보고타에서 충분히 맛보고 떠나기로 맘 먹고 매일매일 커피만 마시며 6일을 보냈다.

전에 과테말라에서 커피 마시던 것만큼이나 미련하게 잠도 안 오고 배가 아플 만큼 매일매일 아침 점심 오후 커피커피.











이전에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남미식 밥상.

그 땐 돈 아낀다고 밖에서 몇 번 안 사먹어서 남미 음식을 거의 못 먹어봤어!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먹어보니 역시 다 비슷한 것 같다ㅋㅋ

고기에 밥, 감자나 유까, 어디서나 비슷한 맛의 스프. 

세상을 한바퀴 돌며 한국음식이 막 해먹긴 좀 까다로워도 얼마나 조화로운 음식인지 알고 나니 이런 구운 고기는 정말 단순해 보인다.


에콰도르나 페루 고산지대에서 유난히도 실하고 맛있었던 감자와 옥수수의 기억.

역시나 콜롬비아의 감자도 너무너무 맛있는데,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식사에 꼭 달려나오는 아보카도! 

콜롬비아의 아보카도는 유난히도 달고 맛이 좋다!















오동통한 질감 때문에 예전부터 참 좋아했던 보테로의 작품들, 심지어 미술관이 무료!




















콜롬비아에 왔으니 일단 첫날은 후안발데스 커피로 시작 (이거 한국 동대문에 생겼다는데 참말이여?)

작년엔 콜롬비아에 못 왔던 아쉬움을 달래며 칠레 산티아고에서 발견한 후안발데스에 열광했었는데ㅋㅋ
















대학생들이 많은 동네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이 작은 광장 바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맥주를 들이키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어딜 가나 무서운 경찰아저씨들이 순찰을 돌고 있지만 콜롬비아의 치안은 최근 몇 년 사이 정말 눈에 띄게 엄청 향상되었다고.







하루는 호스텔 주인 존이 추천해준 식당에서 전통 스프 ajiaco와 메데진의 전통음식 bandeja paisa.

닭고기 스프에 온갖 종류의 고기와 밥과 아보카도!가 곁들여진 꽉 찬 한 접시!







콜롬비아 페소는 대충 반으로 나누면 한국돈으로 환산되는데

존이 추천해준 식당들은 티피컬한 콜롬비아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면서 저렴한 편이라 참 좋았당.







요것도 존이 추천해준 생선요리집!







보고타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몬세라떼 언덕.








걸어서도 올라간다는데 작년에 남미에서 트렉킹하던 패기와 체력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젠 걷는게 귀찮고 힘들 뿐,

바로 케이블카 타고ㅋㅋ











이렇게 시내가 다 보이는 높은 언덕! 야경도 그렇게 멋지다는데 도시 경치에 딱히 관심이 없으니 그냥그냥.

내려다보이는 도시 경치는 없어도 올라가면 푸르른 언덕이 끝도 없이 펼쳐지던 키토 텔레페리코가 훠어얼씬 좋다.








이어지는 커피 탐방.

골목골목 발길 닿는대로 들어가도 아기자기하고 커피맛도 좋은 카페들이 정말 많다.







테이블 앞에서 라떼 아트까지 보여주는데 2천원도 안 하던 커피!

첫 맛은 약간 시면서 마지막은 놀랍도록 깔끔했던 그 맛!








너무 깔끔하고 세련된 카페는 어느 나라 카페인지 알 수 없잖아! 라며 존이 소개해준 기차모양 카페.

어설프게 이것저것 섞인 건 종종 실패. 그냥 기본인 카페 틴토가 제일.












테이스팅이 가능하다고 해서 먼데도 불구하고 찾아간 카페.

택시나 험한 동네를 지나가서 잔뜩 겁 먹었는데 도착해보니 완전 고급 동네-_-







친절한 직원이 친절하게 천천히 설명 다 해주고 원하는 커피 종류 두 가지 골라 테이스팅!

보고타에서 시간이 남아돈다면 추천하고픈 카페 e & d cafe.
















멍하니 커피 맛을 음미하는데 길 가던 꼬마가 아장아장 걸어들어와 꽃한송이를 쥐어주고 가서 완전 행복했던 순간.

요즘 꼬마들이 자꾸 나한테 꽃을 주네! amor perfecto!









같은 동네 식당







놀랍도록 부드러운 닭고기. 다 비슷비슷하지만 먹어본 콜롬비아 음식 중 이게 최고!












동네 맛집인지 현지인들도 엄청 많고 배달도 끊이지 않던 곳. 외국인은 당연히 우리 뿐.








커피가 맛있다는 체인점 크레페 앤 와플,  존이 식사종류도 맛이 좋대서 시도.

맛은 괜춘한데 좀 비쌌다. 동네 대학생들은 다 여기와서 먹는 분위기.

아이스크림 하나는 정말 맛있다.







어느 날 골목을 걷다 보면 갑자기 안 보이던 그림이 길바닥에 보이고








안 보이던 벽화가 보이던 동네








장 보러 나간 김에 종종 구경하던 볼리바르 광장













오랜만이야 야마!








베네수엘라가 울고 있네ㅠ












일요일은 동네 벼룩시장이 열린대서 일요일까지 보고타 안 뜨고 기다렸는데







사람은 많지만 그동안 남미에서 가본 시장이 많아서일까

골동품으로 따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비해 뭔가 부족하고 기념품은 에콰도르나 볼리비아에 비해 비싸고 안 예쁘고 좀 심심한 날이었다.




























오래된 카메라로 흑백사진 찍어준 아저씨! 우리도 한 컷 시도.












금으로 유명한 콜롬비아, 흥미 없어서 안 가려던 금 박물관이었는데 일요일은 무료라 잠깐 구경.








보고타의 마지막 밤은 오빠 생일 전야제!

한국분들이 많아 미역 얻어 미역국도 끓이고!







산크리 꼬망구언니네 까사무를 거쳐온 여행자분을 만나 신나게 술잔을 기울였던 밤.

까사무 다녀온 분도 만나고 11월에 모로코에서 만났던 여행자를 또 여기 보고타에서 만난 사람도 만나고!

돌고 도는 인연이 신기한 세상.


그나저나 보고타의 럼은 정말 부드러워서 목구멍으로 꼴깍꼴깍 넘어가는 게 맛이 아주 좋다.







술에 취해 일찌감치 방에 올라갔다가 몇 시간 후 갑자기 뛰쳐나와 기타를 들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연주를 시작한 생일 주인공.

낯가림이 심해 유난히도 한국 사람이 많던 숙소를 힘겨워하더니 이날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대던 그대ㅋㅋ








상황은 코메디였는데 말이 없는 사진으로는 그저 로맨틱한 밤으로 기억될 뿐.

201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맞이한 생일과 함께 잊지 못할 순간이 되겠지.









높디 높은 마을의 시원한 공기, 흐려도 눈부신 햇살, 사람들의 여유로운 리듬만큼은 다시 발을 내딛는 순간 온몸의 감각으로 기억해내면서도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망각의 동물에겐 살살 틀어야 샤워 끝날 때까지 겨우 유지되는 온수나 느려 터진 인터넷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더라.

커피 마을 살렌토를 가느냐 마느냐, 보고타에서 며칠을 더 머무느냐 가지고도 고민고민을 하던 우리의 모습도.


하루하루가 별 일 없이 쉬워보이지만 그랬다. 

하루하루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었고 어색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고

다시 이 사랑스러운 땅에서 이 여행자의 조증을 유지시켜주는 쫄깃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함 또한 그대로다.



그런데 비로소 다시 내 생활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

한국에서 보낸 4주를 제외하고는 1년 5개월 넘게 이어진 여행,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11개월 만에 찾은 남미에서 그냥 이 공기가, 참 많은 것들이 눈물나게 반가웠다. 반가워서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