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92-600] 그곳에 우리가 있었다. 다정한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숙소 청소하시던 아주머니가 데리고 다니던 인형 같은 토끼!
파나하첼 마지막 날엔 아침부터 오빠가 많이 아팠다.
거의 먹지도 못하고 복통이 너무 심해서 다음날 하기로 한 이동도 미루고 더 쉬어가려고 했는데
다음날 무슨 공사가 있는지 온동네가 다 정전이 될거라는 이야기에 예정대로 이동을 감행하기로! 하고
저녁 늦게 사무실들 문 닫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산크리행 셔틀을 예약했다.
이른 아침부터 달려 도착한 과테말라와 멕시코 사이 국경 마을.
예전에 산크리에서 파나하첼 갈 때는 버스도 구리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려서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두번째라 그런지 더 편하게 왔다.
여행 통틀어 같은 국경을 두 번 건너보는 건 이번이 유일!
2012년 가을 산크리에서 파나하첼 가던 길 건넜던 국경을 2014년 봄에는 파나하첼에서 산크리로 거꾸로 건너고 있다.
아디오스 과테말라!
다시 만나 정말정말 반가웠어.
뿅! 이곳은 다정한 메히꼬!
전보다 쉬웠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짧지 않은 이동에 꼬질꼬질.
새벽부터 쫄쫄 굶고 와서 안티구아에서 사왔는데 아직도 남아있던 빵조각을 폭풍흡입하며 그렇게 드디어 멕시코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멕시코 이후에도 집에 돌아가기까지 거쳐갈 목적지가 몇 군데 남아있었지만
마지막 100일의 여정은 콜롬비아부터 멕시코까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마음 속 최종목적지는 바로 이곳, 산크리였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지만 참 좋아했던 이 높은 도시의 공기는 여전히 청량했다.
기분이 좋아 평소 잘 찍지 않는 셀카까지ㅋㅋ
생각해보니 이렇게 배낭 멘 채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
낯선 도시에, 그것도 어둑어둑한 시간에 도착해 배낭 메고 숙소를 찾아 헤매는 일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미화되지만
그 순간만큼은 배낭이 무겁기만 해서 빨리 숙소를 찾고 싶기만 한데다 (다들 시간이 지나면 무게에 익숙해진다는데 나는 왜! 안 익숙해지는 걸까)
보통 처음 도착한 도시에선 이렇게 커다란 카메라나 아이폰을 맘대로 꺼내놓고 놀아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다.
이제 이렇게 배낭 메고 어딘가 찾아 나서는 일도 '당분간' 없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아쉽네.
왜 더 여유를 갖지 못했는지 지나고 나서 아쉬워하는 건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는데.
산크리! 우리가 왔다! 다시!
우리가 산크리를 다시 찾은 이유는 오직 이 분을 만나기 위해!?
2013년 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꼬망구언니네 커플,
이후 우린 미국으로 넘어가 로드트립을 시작했고 여행을 마친 언니네 커플은 이곳 멕시코 산크리에 와서 호스텔 까사무를 오픈했다.
우리가 참 좋아했던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과 함께 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
그동안 여행하며 보고 싶기도 했고 여행 이후 새로운 도시에서 시작하는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해서
기회가 된다면 꼭 와보고 싶었던 마음이었기에 미국에 차 팔러 다시 오면서 당연히 루트에 가장 먼저 포함시킨 장소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만나도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형님.
부에노스에서 만났을 땐 우린 여행 7개월, 두 분은 2년 가까이 되는 여정의 막바지에 있었는데
다시 만난 지금 우리가 20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다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좋은 거 보고 즐겁게 다녀도 떠돌아 다니는 리듬에는 몸이 지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찌들대로 찌든 우리의 얼굴과 달리 확 좋아진 형님 얼굴에 한 번 깜짝 놀라주고.
1년 사이 까사무는 이름만큼이나 번창했는지 다른 여행자분들도 많이 계시고 요리를 잘 하는 장금이언니가 계셔서
도착한 날부터 그리운 고향의 맛을 느끼며 밥 한 그릇에 오빠의 복통은 급속도로 좋아졌다ㅋㅋ
비바 메히꼬!
5월 말의 산크리는 우기였지만 주로 비는 오후 늦게부터.
아침에는 이렇게나 기분 좋은 쾌청한 하늘을 만날 수 있다!
지난 번 왔을 때도 주변의 다른 볼거리는 다 제쳐두고 산크리 안에만 콕 박혀서 동네 산책만 하고 다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ㅋㅋ
돌아온 산크리는 이전보다 세련된 상점, 카페, 레스토랑들이 더 많이 새로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깔끔하게 잘 차려입은 거리의 사람들은 1년 반 전보다 왠지 더 새침해보이기까지 했는데
반면에 여유로운 사람들, 관광객 사이사이 구걸하는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다시 간 과테말라에서는 오히려 구걸하는 사람들이 적어져서 지난 번 왔을 때 괜히 선입견을 가지고 봐서 많이 보였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산크리에 오니 확실히 많다.
멕시코의 빈부격차는 워낙에 알려져 있지만 그 사이 더 악화된 건 아닌지,
특히나 여긴 멕시코에서도 가장 경제가 좋지 않은 치아파스라 마음이 무겁다.
산크리의 잘 사는 현지인들은 정부에서 보조금 꼬박꼬박 받아가는 원주민들이 거리에 나와 구걸하며 마을 미관을 해친다고 싫어한다는데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그냥 돈 몇 푼 보조해주는 건 그들에게 크게 도움되지 않는 것 같다. 교육이 관건.
그 와중에 이 근처에 미국에서 온 한국사람이 지은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엘리트' 크리스천을 양성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선발기준은 초등학교 성적.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 못 가는 애들은 다 두고 공부 잘 하는 애들 좋은 대학 보내면 된다는 식,
크리스천인 '엘리트'만 양성하면 이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완전 경악했다.
사비 들여 하고 싶은 교육사업하겠다는 사람 말릴 방법은 없겠지만
정말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개발사업을 하고 싶다면 무엇이 우선이고 도움이 되는 방법인지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좋은 뜻 가지고 자원활동을 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참여하려는 활동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고. 제발.
멕시코에 돌아오면 맛있는 따꼬!를 먹겠다며 노래를 불렀는데 까사무에 있으니 밖에 뭐 사 먹으러 나갈 기회가 없었다ㅋㅋ
매일매일 이어지는 특식, 햇살이 잘 비추는 집 안에서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왁자지껄하는 식사.
돈까스 먹고 데낄라 파뤼 (근데 켄타짱은 왜 서 있는거지?)
하는 일 없이 벌써 일주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 일주일이란 시간은 짧기만 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자전거 여행 중인 맑은 청년 유유.
하루는 연어파뤼
산크리에서 맞이한 내 생일.
여행 나와 맞는 두번째 생일이었다.
지구별에 태어나 행복하고 너를 만나 더 행복하고 그래서 내 생일은 특별하지만
수많은 아름다운 날들 중 어떤 하루일 뿐이라 더 특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 여행 중의 생일.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어색한 이별을 뒤로 하고 떠날 시간.
오랜만에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눈물이 핑 돌더라.
주고 싶은 만큼 줘야 후회가 남지 않는데 나는 아직도 서툴구나- 이별에만 서툰 게 아니라 만남에도 서툰 거였어-라고 생각했다.
이제 산크리에서 멕시코시티로.
오랜만에 타는 멕시코 버스! 앞좌석이랑 무릎 사이에 이렇게나 공간이 많이 남는다며 기뻐하며 찍은 사진.
중미 버스들은 느무 좁았어ㅠ
산크리에서 멕시코시티까지 야간버스 이동 후 오후에 있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야했는데
오전에 시티 도착하면 공항까지 시간이 엄청 넉넉해서 남아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여행의 시간은 예측불가.
시티 들어가는 도로가 꽉 막혀 거기서 몇 시간을 버리고 막판까지 불안불안하게 겨우 시티 입성.
버스에 모여든 택시삐끼 아저씨들조차 버스 계단에서 내려오는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것을 잊지 않는 이곳, 멕시코.
산크리보다 훨씬 더 다정한 시티 사람들 덕분에 마지막까지 아마블레 메히꼬(다정한 멕시코!)를 외치며 감동감동.
그리고 드디어 지하철 내려 공항 가는 길.
2012년 10월, 멕시코에서 이 여행을 시작하던 우리가 처음 멕시코 시티에 도착해 지하철 타러 걷던 그 길
막연히 멕시코에 가지고 있던 무서운 이미지 때문에 무서운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으로 걷던 그 길
하지만 따뜻한 기억만을 안겨준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던 내일 덕분에 2014년 5월의 우리가 다시 이 길 위에 있다.
우리 랜드크루저 김치가 안 팔려서 조바심 나던 그 마음은 언제였는지
덕분에 우린 다시 아메리카 대륙에 돌아와 여행을 처음 시작한 장소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며
이런 소중한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차가운 그 바람소리, 그 길을 걷던 두근두근 우리의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곳에 너와 나, 우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