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별살이 121314/Cuba

[Day 72-73] 잔잔하게 안녕 쿠바. 국적불명 바라데로(Varadero)



아바나 이후의 일정은 넉넉하게 잡고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오래 있자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이동의 이동을 반복하다가 전혀 생각도 없던 바라데로(Varadero)까지 왔다.


바라데로로 말할 것 같으면 쿠바의 대표적인 휴양도시.


깐꾼의 호텔존처럼 보통 쿠바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비싼 올인클루시브 호텔들이 해변에 늘어서 있고 

주고객은 캐나다나 유럽 관광객인 것 같았다.


애초에 전혀 올 생각이 없었고 인터넷도 안 되니 예약도 안 했고 어떤 숙소가 있는지, 얼마 정도 하는지도 대충 짐작만 할 뿐이었다.

깐꾼에서 엄청난 프로모션을 찾아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호텔에 묵었던 기억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 

역시 멕시코가 아닌 쿠바가 그런 행운을 우리에게 안겨줄 리 없었다.


그렇게 무작정 버스에서 내려 가격을 물으며 호텔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지쳐 그냥 하루니까 더이상 헤매지 말고 들어가기로 했다.

쿠바에서 2주동안 고생했으니까 하루쯤은 괜찮겠지, 당장 내일이면 에콰도르 키토로 가는데 이렇게 지쳐서 가면 고산병 걸려-라며

역대 손꼽히는 돈ㅈㄹ을 합리화 하면서 흑흑.







밥 주고 수영장 있고 코 앞이 바다인 호텔이었던지라 특별히 나쁜 기억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았던 기억도 없어서 누군가 바라데로에 간다고 하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휴양지는 다른 나라에도 얼마든지 많고 호텔 안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굳이 쿠바까지 가서 이런 국적불명의 호텔 안에 들어가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물론 바다는 아름답다!


깐꾼의 바다가 눈부시게 투명했다면 바라데로의 바다는 우유빛이 도는 파스텔톤.

깐꾼의 바다는 파도가 엄청 컸는데 바라데로의 바다는 훨씬 잔잔해서 물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았던 것 같다.







"우리 지금 여기서 뭐 하는거지?"

"몰라, 그래도 내일이면 쿠바도 안녕이니까 아무 생각 말고 쉬자."












그렇게 별다른 기억이 없는 바라데로에서 하루를 꼬박 채우고 다음날 오후 늦게 아바나 공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에 올랐다.


드디어 중미를 떠나 남미로 향하는 날!

에콰도르로 향하는 우리의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이었으니 최대한 늦게 공항에 도착해 노숙을 하는 게 목표였다.


쿠바 내내 더워서 죽을 것 같았는데 바라데로 호텔부터 쌩쌩 나오는 에어컨에 몸이 으슬으슬.

공항 가는 버스에서는 기사아저씨가 에어컨을 틀다가 18도가 되면 끄고, 다시 26까지 올라 땀이 질질 날 때쯤 다시 에어컨을 켜기를 반복하더니

공항에 도착할 때쯤엔 오싹오싹 몸살이 걸려버렸다 흑.








깐꾼에서 사온 스니커즈를 쿠바 2주에 걸쳐 아끼고 또 아껴먹어서 결국 마지막 날 끝을 냈다며 인증샷.


저녁 즈음부터 텅빈 공항에서 자리 잡을 곳을 찾아 서성였는데,

공항에서조차 치노치나거리며 흘끔대는 쿠바노 때문에 자리를 옮겼던 기억이 문득 나네.







와이파이가 될 리는 없고 아이폰으로 앵그리버드를 하며 대선결과를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었던 순간이라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덜덜 떨며 졸다가 해가 밝아오던 새벽 무렵 티켓팅을 하고 들어가서는 

공항 내부 유료 인터넷 코너에서 참지 못하고 거금을 들여 2주 만에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절망했던 그 기분도.


2012년의 12월 20일.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비몽사몽하며 그렇게 에콰도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슬프지만 벅찼고, 벅찼던 그 기대감보다 백만배 감동적이었던 남미로.


참 지쳐있던 날이었는데 남미가 시작되던 날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