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동물친구들과 아름다운 바다가 있던 보카스 델 토로에서 나와 더 신기한 동물친구들이 많다는 코스타리카로 향하는 날.
우리의 목적지는 그나마 보카스에서 가까운 캐리비언 바다 마을 puerto viejo지만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야하는 여정.
보카스에서 뿌에르또 비에호까지 직행 여행자 셔틀이 있지만 우리끼리 로컬버스 갈아타고 가는 것보다 가격이 느무 비싸다.
이 때부터 코스타리카의 고된 이동이 시작.
코스타리카에서 이동은 매번 참 힘들다 흑흑.
보카스에서 배 타고 알미란떼(almirante)로 나와서 버스타고 조금 더 북쪽의 큰 마을 창기놀라(changinola)까지 간 다음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국경마을 식사올라(sixaola)까지.
귀찮은 여정이지만 그래도 파나마의 버스들을 탈만 하다.
미국 스쿨버스 개조해서 쓰는 버스도 생각보다 널찍하고.
오랜만에 걸어서 넘는 국경!
파나마시티에서 산호세(코스타리카 수도)까지 이어지는 판아메리카하이웨이 쪽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는 많은데
이쪽으로 국경을 넘었던 한국사람은 별로 없었는지 파나마 출국심사에서 우리만 여권심사가 오래 걸렸다.
자기들끼리 꼬레아 데 수르(남한)는 규정이 뭐지? 무비자 며칠이지? 막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서류를 뒤적뒤적.
한참 후에야 무비자 90일인걸 알았는지 도장 꽝꽝 찍어주고
차! 후! 이름을 부르면서 씨익 웃어보이던 아저씨.
파나마 쪽은 여권심사 한번 하고 조금 더 걸어가 다른 사무실에서 출국스티커를 굳이 붙여주더니
출국세 3달러를 받는다.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뭐? 못 들었는데? 하고 버텨봤으나
뒤에 있던 여행자들이 원래 내는 거 맞을거라고 해서 그냥 냈음. 뭐야 출국세ㅠ
좋은 경치 구경하며 다리를 건너면
이곳은 코스타리카!
바로 붙어있는 나라들인데도 파나마와 코스타리카는 한 시간 시차가 있다.
이동하느라 시간 다 쓰는 하루, 한 시간 벌어서 좋은 것 같지만 한 시간 일찍 해가 지니 사실 다를 게 없다.
다시 여권심사 후 삐질삐질 땀 흘리며 걸어서 버스터미널까지.
puerto viejo까지 향하는 버스표를 사고 드디어 숨을 고른다.
코스타리카는 콜론이라는 화폐를 사용하지만 관광객이 많아서 달러도 많이 통용되는 편.
돈은 뿌에르또 비에호 가서 뽑을 생각이라 일단 달러로 표를 샀는데 나중에 보니 달러로 사는게 더 비쌌음.
그나저나 보카스부터 습해서 안 마른 오빠의 옷가지들 냄새가 폴폴ㅠ
버스 기다리는 동안 옷들 꺼내 말리기ㅠ
코스타리카 하면 바나나 플랜테이션!
버스를 타고 달리는 내내 옆으로 바나나 나무가 빽빽하다.
이 수많은 바나나를 보면서 도착하자마자 바나나를 먹어봐야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상하게도 마트에서 바나나 보기가 정말 어려웠다.
결국 이틀인가 삼일을 기다려 드디어 마트에 들어온 바나나를 아침 일찍 가서 득템했는데 오후에 가보니 완전 동 나 있더라-_-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카리브를 벗어나면서부터는 그래도 마트마다 바나나가 많이 보였는데 유독 이 동네는 그랬다.
Puerto Viejo de Talamanca
보통은 그냥 뿌에르또 비에호라고 하지만 같은 지명이 많아서 풀네임으로 찾으려면 요렇게.
따뜻한 카리브해와 함께 수백년 전 이주해온 흑인들의 삶의 정취와 문화가 느껴지는 마을,
밥 말리의 노래가 어울릴 수 밖에 없는 중미의 카리브 마을.
파나마에서 그랬듯 코스타리카의 다른 지역보다 흑인들이 훨씬 많고 생활수준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다.
화려한 리조트가 널린 태평양 휴양지에는 미국사람들이 엄청 많은 반면
카리브 쪽은 유럽 여행객들이 더 많다고.
미국이나 유럽이나 다를 게 없을 것 같지만 여행하며 만나보면 다르긴 좀 다르다.
숙소 예약을 안 하고 도착해 찾는데 이미 방이 없는 곳이 많았다ㅠ
결국에 찾은 숙소는 꽤 깨끗하고 위치도 좋았지만 부엌이 없다는 게 함정.
코스타리카는 중미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음식을 해먹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오는 곳이다.
그래도 카리브니까 해산물은 몇 번 사먹지 않겠어? 하며 일단 방을 잡고
불이 필요없는 샐러드나 과일로 버텨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코스타리카는 파나마보다 gdp가 더 낮은데 물가는 2배 이상.
이 물가를 현지인들은 어떻게 감당하고 사는 지 정말 궁금하다.
여행지의 여행자 물가를 고려해도 마트에서 사는 식재료부터 물값!도 너무 비싸다.
짐을 풀고 오랜만에 와이파이에 연결했더니 평소 같지 않게 카톡이 엄청 와 있었다.
와이파이가 안 돼서 며칠 연락이 안 되고 페북도 안 하고 블로그 업뎃도 없었더니 주변에서 걱정이 되셨던 것.
세상이 흉흉하니 연락 못 드릴 때는 미리미리 알려드리고 다녀야겠다.
도착한 날은 피곤해서 쭉 쉬고 다음날 아침.
여행자들이 많은 마을이라 꽤 질 좋은 음식을 파는 카페들을 찾을 수 있는데 우리가 애용했던 카페 Bread & Chocolate.
코스타리카의 싱싱한 커피!와 싱싱한 카카오!로 만든 음료나 과일주스, 디저트류는 맛도 최고고 가격도 저렴한 편.
여기서 먹은 커피는 여행 통틀어 먹어본 커피 중에 1, 2위를 달릴 만큼 아주 맛이 좋았고 브라우니도 짱짱.
역시나 주인은 미국인이고 음식 가격은 저렴하지 않지만-_-
아침에 맛있는 커피와 함께 음식 하나 먹으면 꽤 배가 불러서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비싸도 비슷한 메뉴를 한국에서 브런치라고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파는 거에 비하면 질도 좋고 훨씬 싸다.
이제 한국 돌아가면 다 만들어 먹을테다.
puerto viejo는 마을 남쪽이나 북쪽으로 더 예쁘고 조용한 해변들이 이어져 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남쪽에 있는 해변들을 따라 쭉 달려보기로!
(편도에 12km정도 되는 듯)
습한 열대우림 지역이라 바다만 벗어나면 모두 정글.
바다가 보이는 정글을 따라 달리는 기분 최고!
차들 씽씽 달리는 도로 갓길에서 자전거 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긴 달리는 차들도 거의 없고 오랜만에 정말 편안하고 즐거운 라이딩이었당.
우슈아이아!
달리다 중간에 옆길로 슬쩍 빠져서 들어가보면
punta uva.
번역하면 grape point, 포도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지인들은 뿌에르또 비에호보다 여기 바다가 훨씬 아름답다고 하던데
날이 흐려서인지 바다가 그렇게 특별한지는 모르겠으나 (멕시코 카리브 이후 바다 불감증에 걸린듯 흑흑)
사람 없는 한적한 바다도 너무 좋고
무엇보다 땀 흘리고 도착해 풍덩! 하는 그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이번 여행으로 우리 둘다 동물들이랑 더 많이 친해진 것 같다.
차가운 도시 남자였던 오빠도 이제 아무 데서나 다가오는 강아지들 쓰담쓰담.
조금 더 달려 이번엔 Manzanillo.
엄청나게 긴 해변과 스노쿨링 하기 좋은 맑은 바다로 유명한 곳인데 마을 자체는 워낙 작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폰으로 하도 대충대충 찍어서 그런지 느낌이 안 살지만
한적하게 쉬고 싶은 바다를 찾는다면 추천할 만한 곳.
숙소도 몇 개 있고 뿌에르토 비에호로 오는 버스들이 대부분 만사니요를 거쳐간다.
우린 또 한참을 시원한 물에서 풍덩풍덩 하다가 툭툭 털고
돌아가는 길.
갈 때는 양쪽 정글에서 막 동물이 크어어어 포효하는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서 무섭기까지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원숭이 소리였던 것 같다. 대박.
뿌에르또 비에호의 일몰.
저녁 먹으러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 노을 지는 하늘에 넋을 잃었다.
동쪽 바다의 노을도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 거구나.
저녁은 카리브 생선요리!
전날 동네 음식점에 들어가 이 동네 티피컬한 음식이 뭐야? 물었더니 기대와 달리 뽀요(치킨)이라고 해서 왕실망하고
이 날은 인터넷에서 맛있다는 집을 검색해서 찾아가는 정성을 들였는데 단연 최고였던 맛집.
어부 아저씨가 그날 잡은 물고기가 있으면 가게 문을 열어 직접 구워 팔고 없으면 문을 안 여는 그런 곳.
아저씨 이름은 Lazio인데 간판도 없고 그냥 생선 그림만 있다ㅋㅋ
가격은 역시나 저렴하지 않아서 하나에 14달러 정도 하는데
같이 나오는 구운 채소에 감자튀김에 소스맛이나 양도 너무 훌륭해서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 주인아저씨는 동유럽 출신.
이쪽 카리브 쪽에는 미국사람들보다 유럽사람이 훨씬 많고 분위기가 여유롭고 살기 너무 좋다며.
자기 나라가 싫어서 한동안은 미국에 이민을 가 살았는데 미국도 싫어서 여기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은 자기 같은 개인 어부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규제로 어업을 방해하면서 엄청 큰 기업들은 내버려둔다며.
우리가 아시아에서 와서 그런지 중국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아저씨 말로도 코스타리카의 슈퍼마켓은 다 중국사람 꺼라고 했다ㅋㅋㅋ
예전부터 들어와 장사를 해서 어떤 사람은 돈 없는 티코들 (코스타리카 원주민들을 tico라 부름)에게 땅을 받고 쌀을 팔아서
이 동네 땅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중국인도 있다고.
한국사람은 없어? 물었더니 "없어! 다 중국사람이야! 한국사람은 와서 할 게 없을껄? 중국인이 다 차지하고 있으니까"라고 하더라-_-
아저씨는 예전에 미국 살 때 한국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한국사람들이 낚시가서 생선 회 떠먹는 걸 보고 엄청 감명받고 양념을 배웠다면서ㅋㅋ
이곳 카리브의 참치가 세계 최고고 일본 참치는 비할 바가 아니라며 자기가 참치를 잡는 날엔 정말 최고의 요리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있는 동안에는 아저씨의 참치를 먹는 행운은 없었다ㅠㅠㅠㅠㅠ
사먹지 않을 땐 방에서 샐러드를 만들거나 그나마 저렴한 치킨을 사다 먹었는데
큰 거 한 조각이면 배가 부르고 늘 갓 튀겨서 완죤 바삭바삭했던 치킨ㅋㅋ
큰 거 한 조각에 2천원 정도니 비싸긴 비싸.
다음날은 이 카리브 마을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결국 더워서 선풍기 있는 방 안에서 인터넷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버리고
그 다음날 북쪽에 있는 Cahuita에 가려고 길을 나섰더니 날씨가 완전 우중충했다.
방에서 하루종일 쉰 전날은 해가 쨍쨍했는데 흑.
Cahuita는 버스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바닷가 마을로 예쁜 해변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더 유명한 곳.
코스타리카 어딜 가나 있는 화려한 색감의 그림으로 우릴 반기던 cahuita.
비싸고 교통편이 엉망이라 매일 불평을 하지만
화려한 색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자연 그대로 진짜 다양하고 컬러풀한 나라 코스타리카.
터미널에서 마을을 지나 국립공원으로
입장료는 없고! 그냥 들어간다는 신고만 하고 나면
바다 옆으로 걷기 좋은 정글 트레일이 이어진다.
들어가자마자 머리 위로는 원숭이들이 막 뛰어다니고!
신기한 나무들이 가득.
트레일은 완전 평지에 자연이 너무 좋아서 비만 안 오면 쪼리 신은 채 몇 km라도 걷고 더우면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은 곳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거세진다ㅠ
아앙, 여기가 제일 기대했던 곳인데 날을 완전 잘못 골랐어ㅠ
트레일 중간에는 강이 바다로 흐르는 곳이 있어서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곳까지 건너가며 트레일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비 때문에 진흙길이 너무 심해져서 중간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이야기 흑흑.
하지만! 우린 이날 야생에서 이런 녀석을 만났으니!
이름하야 아르마디요! (영어로는 아르마딜로!)
갑자기 사람들 걸어다니는 트레일에 나타난 이 녀석은 아직 아기 같았는데
사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막 우리 발로 걸어와 발가락에 코로 킁킁 막 뽀뽀하고 완전 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래도 길을 잃고 좀 아파보여서 옆에 있던 티코 아주머니가 공원 관리자에게 달려가 신고.
건강하게 잘 살아라 아르마디요야!
일요일이라 그런지 비가 와도 바다에서 노는 티코 가족들이 많았던 오후.
우린 비를 피해 쉬면서 마을 구경을 하기로 했다.
세계테마기행 카우히타 편에 등장했던 아저씨 그림. 이 동네 출신 유명한 음악가란다.
그냥 광고판인데 노란 꼬리 새 그림 때문에.
보카스에서 매일 본 새였는데 선명한 노란 꼬리에 울음소리가 정말 독특했다.
꼭 온 몸을 앞으로 숙이고 꼬리를 위로 치켜들면서 우는데 소리가 후루룩! 후루룩!
이름은 모르겠지만 유명한 새였나보다ㅋㅋ
오른쪽 위로 보이는게 나무늘보, 왼쪽에 보이는 입 큰 애가 남미 정글부터 그렇게나 보고 싶었는데 결국 이번에도 못 본 투칸.
근처 동물 레스큐 센터에 가면 볼 수는 있다는데 우린 그냥 야생에서 보고 싶다ㅋㅋ
기가 막히게 싱싱하고 저렴한 과일주스 마시며 버스 기다리는 중.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다 젖어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요일도 완전 잘못 골라온 우리는 유독 띄엄띄엄 있는 일요일 버스 스케줄 때문에 두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어제도 또 그랬지만, 코스타리카에서 일요일엔 웬만하면 이동을 하지 않는게 상책인듯ㅠ
돌아온 뿌에르또 비에호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엄청 타서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수영복을 입은 효과.
엄청 타고 그 위에 모기까지 물리니 가려움과 따가움이 뒤섞여 약간 괴로웠다.
똑같이 스페인어를 쓰지만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말들이 들린다.
중미에 와서는 고마워! 하면 de nada (아니야, 천만해)가 아니라
mucho gusto! (you're welcome이나 my pleasure 정도의 의미)
코스타리카에서 자주 쓰는 말 pura vida!
영어로는 pure life 정도로 번역되지만 훨씬 다양한 의미로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것 같다.
인사할 때도, 헤어질 때도, 애들끼리 놀다가도, 누군가를 격려할 때도 항상 pura vida!
인생은 좋은 거라고, 쉬엄쉬엄 즐기면서 가라고 서로 그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세상.
우리가 사는 곳도 그런 곳이면 얼마나 좋을까.
pura vida!
'지구별살이 121314 > Costa Rica'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 574-576] 티코들이 사랑하는 바다, Playa Samara. (2) | 2014.05.14 |
---|---|
[Day 571-573] 시원한 바람, 이곳이 천국. Monteverde(몬테베르데) (2) | 2014.05.12 |
[Day 568-570] 기대와 달라서 새로운 내일 Cerro Chato, La Fortuna (라 포르투나). (2) | 201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