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서 코스타리카 내륙 화산마을 La Fortuna로 향하는 날.
중미의 나라들이 다 그렇듯 코스타리카도 그렇게 크진 않은데 길이...참 구리다.
워낙에 인프라가 부족하고 경제사정이 안 좋은 나라를 여행할 땐 불편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코스타리카는 체감물가는 다른 나라의 두 배 이상이면서 교통이 불편하니 자꾸만 불만이 샘솟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데
코스타리카의 모든 길은 수도 산호세로'만' 통한다.
어딜 가든 산호세를 거쳐야 하는데 문제는 버스들끼리 시간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여행자들이 타고 다니는 에어컨 나오는 셔틀버스를 타면 시간이 반도 안 걸린다는데 가격이 막 4-50달러씩 하니 꿈도 꿀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틀을 타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이동이 힘들어질 때면
일반 버스회사들이 셔틀회사들이랑 담합을 한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puerto viejo에서 la fortuna까지 셔틀로 4-5시간 걸린다는데
우린 일단 산호세까지 4시간, 거기서 다시 버스 타고 4-5시간이 걸릴 예정.
식빵 한 줄을 사서 하루 먹을 양식으로 통째로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코스타리카의 물가는 마트 물가도 예외가 아니라 햄 치즈 넣어 싸는 것만 해도 10달러가 넘게 든 것 같다ㅠ
중남미 저렴이 빵은 어디서나 빔보로 통일.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오후 들어서는 맛이 조금 변한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다음날 둘 다 배가 아팠다.
뿌에르또 비에호에서 7시 반 첫 차를 타고 산호세.
수도이기는 하나 볼 건 없는 도시라 버스만 갈아타고 바로 아웃.
4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니 산호세에 1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하지만 산호세에서 라 포르투나로 향하는 직행버스는 오전 11시 50분이 막차-_-
근데 또 이상하게 라 포르투나에서 산호세로 나오는 버스는 오전에는 없고 오후에만 있다-_-
이미 직행은 물 건너 갔고
택시 기사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다른 도시(엄청 먼 도시!)로 택시 타고 가면 직행버스를 탈 수 있다고 사기를 치려고 했지만
ciudad quesada라는 도시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라 포르투나행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이 있다.
유일하게 에어컨!이 나오던 ciudad quesada 행 버스에서는 잠시 상쾌함을 만끽하며
카리브 쪽은 버스도 차별하냐고 거기만 버스 왜 그렇게 구리냐고 막 얘기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 버스 말고는 상태가 다 비슷하더라.
다시 ciudad quesada에서는 병아리가 삐약삐약 거리던 치킨버스로 갈아타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 라 포르투나까지.
결국 아침에 길을 나선 지 10시간 만에 라 포르투나에 도착ㅠ
땀범벅에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어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라 포르투나로 향하는 산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검은 몸에 형광분홍색 날개를 가진 이름 모를 새도 보고!
라 포르투나의 숙소들은 카리브보다 대체로 가격대가 높지만 대신 깨끗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
그래서인지 너도 나도 이름에 resort를 붙여 hostel resort, backpackers resort 이런 식인데
진짜 도미토리도 에어컨이 빵빵하고 화장실도 엄청나게 깨끗해서 편하긴 아주 편했다.
그동안 부엌 없는 숙소에 고생했던 우린 무조건 부엌 있는 숙소를 찾아 arenal hostel resort로.
생각보다 볼 것도 할 것도 없었던 라 포르투나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숙소에 대한 기억 뿐이다.
오랜만에 에어컨 있는 방에서 눅눅하게 안 말랐던 옷들 꺼내 빨아 바짝 말리고
한 맺힌 듯 매 끼 열심히 해먹고 누워서 드라마나 보던 하루하루.
여행 전에는 환경오염이나 찬 바람이 몸에 더 안 좋다며 에어컨을 꺼리던 우리 두 사람이었는데,
어째 여행하면서 에어컨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 무지 씁쓸하네-_-
일단 코스타리카에서 제일 맛있는 britt 커피 한 봉지랑 오랜만에 융드리퍼 사다가 커피부터 내려 마시고!
마트도 뿌에르또 비에호보다 물건이 많고 같은 물건도 더 쌌는데 무엇보다 고기가 싱싱해서 간만에 영양보충.
다른 건 비싸도 신기하게 고기값은 많이 안 비싸더라.
호스텔에 사람은 많았는데 다들 해먹기 귀찮았는지 사먹기만 해서 덕분에 부엌은 우리 차지.
코스타리카의 산과 숲이 있는 여행지는 워낙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내륙에서 유명한 건 몬테베르데와 라 포르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몬테베르데를 두고 우리가 라 포르투나에 온 건
사실 즐겨보는 다른 여행블로그에서 여기가 꼭 칠레의 푸콘 같다는 그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우리가 참 좋아했던 화산과 호수의 마을 푸콘.
하지만 막상 라 포르투나에 와보니 그 유명한 아레날 화산은 늘상 구름에 가려 아래만 슬쩍 보이고
동네 자체도 아무런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서 좀 실망스러웠다.
더군다나 아레날 투어는 너무 비싸고 개인적으로 가려해도 대중교통이 없어 비싼 택시비에 비싼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막상 그것도 화산 언저리를 걷다 오는거지 진짜 화산을 오르는 트레일도 아니라고 했다.
흠, 그럼 모하지?
아무것도 없는 마을.
근처에 택시를 타고 나가면 동물을 볼 수 있는 센터나 온천 같은 것들이 관광포인트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역시나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쌌고 평도 많이 엇갈리는 편이라 가지 않기로 했다.
여긴 호스텔로 리조트풍을 지향하는 걸 보면
차 있는 사람들이 마을 외곽 산 아래 공기 좋고 시설 좋은 리조트나 방갈로 같은데 묵으면서 쉬어가는 여행지인 듯.
나중에 몬테베르데에 가서 알았지만 몬테베르데가 훨씬 할 것도 많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푹푹 찌는 라 포르투나보다 시원한 공기도 훨씬 좋고.
그래도 유일하게 에어컨이 있던 숙소에서 빨래 다 말리고 고기 먹으며 잘 쉬었으니 괜히 왔다는 생각은 말자구!
이런 종류의 기념품들은 중남미 어딜 가나 비슷한 편인데
코스타리카는 워낙에 가진 자연도, 살고 있는 동물도 다양해서인지 딱 코스타리카스러운 그림과 문양이 참 많다.
라 포르투나에서 비교적 적은 교통비로 가이드 없이 가볼 수 있는 몇 곳이 있다면
arenal보다 마을에서 더 가깝고 작은 화산 cerro chato나 마을에서 걸어가 물에 들어가 놀 수 있다는 폭포.
그래도 왔으니 한 가지라고 하고 가자며 우리가 선택한 곳은 바로 cerro chato.
그림에 보이는 화산 중에 왼쪽에 있는 작은 거.
오랜만에 좀 걸어보자고 온 동네니까 이왕이면 화산에서 걸어보자는 마음,
올라가면 옆에 있는 아레날 화산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저 호수에서 수영할 수 있다는 말도 꽤나 매력적이었다.
결국엔 화산도 안 보였고 수영도 못 했지만 뭐 걷는 재미는 충분했던 걸로ㅋㅋ
역시나 대중교통은 없고-_- 택시로 편도 8달러, 입장료는 10달러.
자, 그럼 올라가볼까?
산 하나 오르는데 왕복 2-3시간이면 된다고 해서 얼마 안 걸린다 싶었더니 처음부터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코스타리카 특유의 화려하고 신기한 꽃들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구만!
내 손보다 훨씬 큰 신기한 질감의 꽃과 하얀 내 손바닥과 검은 내 팔뚝.
진짜 리조트도 아닌데 굳이 팔찌를 차고 있어야 하는 호스텔.
사진에 보이는 저 작은 보라색 꽃잎들과 풀잎은 모두 개미들!
정말 쉬지 않고 끝도 안 보이는 개미들이 잎을 옮겨대는데, 이런 광경은 에콰도르 정글에서 본 이후에 참 오랜만이다.
열정적으로 촬영 중이심.
벌써 마을이 저기 아래로 내려다보이네!
해는 뜨겁고 공기는 습하고 이미 땀범벅.
우린 오전에 출발해서 올라갈 때만 해도 사람이 별로 많아 한적한 트레일을 즐길 수 있었는데
내려올 때쯤엔 그룹투어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났다. 신기하게 중국 관광객들이 있더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정글 속 트레일!
헉헉 힘들어.
다들 2-3시간이란 말에 우리처럼 가벼운 하이킹을 생각하고 왔는데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서로 인사하며
"헉헉, 여기 생각보다 안 쉽다. 그치?"
길지 않은 하이킹이지만 급경사에 진흙길에 오빠는 내려오는 길에 엉덩방아를 찧었을 정도.
그래도 오랜만에 땀 흠뻑 흘리며 걷는 기분 좋은 이 느낌.
그 와중에 어디 신기한 동물 없나 눈에 불을 켜고 걸었지만 내 눈으론 찾을 수가 없다.
사실 여기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건 개구리.
코스타리카에는 신기한 개구리들이 정말 많은데,
막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밝은 연두색 빛에 발만 빨간색이고 눈은 엄청 큰 그런 개구리가 특히 유명하다.
정글 속에서 커다란 나뭇잎 위에 발가락 세 개 쫙 벌리고 앉아 있는 개구리를 꼭 보고 싶었건만 안 나타주더라ㅋㅋ
눈으로 볼 수 없다면 귀로 들으면 되지!
사방에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들려오고 그 중에서도 플룻을 연주하는 것 같았던 그 소리는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두 시간 좀 안 되게 걸어 드디어 정상!
헉 근데 아무것도 안 보여-_-
아래 에머랄드빛 호수를 보려면 다시 험한 길을 내려가야 한다.
여기부턴 걷는게 아니고 그냥 나뭇가지 잡고 앉고 기고 클라이밍을 해야하는 수준.
여길 내려가면 그 맑은 물에 청벙첨벙할 수 있는데
오빠가 가기 싫어해서 그냥 나무 사이로 물빛이 보이는 곳까지만 내려갔다가 후퇴.
그래, 뭐 여기가 그레이빙하도 아니고 꼭 갈 필요 없지 뭐ㅋㅋ
사진에서 잘 보면 보인다. 파아란 물ㅋㅋ
내려오는 길엔 개구리 대신 무지개 빛 도마뱀!
아니 어떻게 무지개색일 수가 있지?
이건 바나나 꽃인가?
원래는 라 포르투나에서 태평양 바다마을로 바로 이동을 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매우 답이 안 나오는 버스루트와 연결시간 때문에
또다시 숲이 있는 몬테베르데에 들렀다가 그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처럼 계획없이 다니면 꼬이기 십상인 코스타리카의 루트-_-
산호세를 거점으로 왔다갔다 하면 더 수월하지만 그렇게 되면 산호세에서 숙박을 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어디서 어디로 버스가 연결되는지, 버스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도 미리 잘 알았다면 아마도 바다를 먼저 갔다가 여기를 거쳐 바로 니카라과로 올라갔을 것 같은데.
하지만 덕분에 라 포르투나보다 훨씬 좋았던 몬테베르데를 발견했으니 괘아나.
또 그 덕분에 처음 계획과 달랐던 바다에 와서 지금 너무나 좋으니까.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곳을 찾게 되는게 여행의 묘미.
그래서 라 포르투나는 이름이 fortuna(fortune)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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