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짜여진 계획대로 잘 못하는 성격이라지만, 여행지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더 자주 생기기 마련.
3일 정도만 머물려던 산티아고에선 피곤한 몸 때문에, 망가진 컴퓨터 때문에 일주일이나 보내게 되었다.
산티아고에서 고치려면 한달이나 걸린다고 해서 4월 말이면 미국 와서 고쳐야지! 했던 컴퓨터는
미국에 오자마자 맡긴지 한달이 넘도록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고 (다음주쯤에는 받을 수 있을 듯!)
덕분에 3개월만에 다시 시작하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흑흑
볼리비아에서 들어가면 체감물가가 가히 살인적이라는 칠레.
이미 아따까마에서부터 호스텔 가격이 장난아니라는 걸 실감했지만 (1인 20달러 수준)
우유니와 아따까마에서 엄청 아팠던 나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24시간 버스를 탈 때까지도 위로 쏠리는 느낌을 겨우겨우 참고 있었던터라
산티아고에 와서는 편안한 숙소에서 무조건 잘 쉬는게 빨리 낫는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찾은 숙소.
booking.com에서 찾은 원룸형식의 아파트먼트.
원래는 밥 잘 나오기로 유명한 산티아고 고려민박에 가고 싶었지만 당시 몸상태로는 뭘 줘도 못 먹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담담하고 소화 잘 되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민박이나 호스텔이면 2인 50달러 정도 드는데, 요긴 1박 55달러.
여기서 일주일을 보냈는데 매끼 장 봐다가 음식을 해먹었더니 식비로 드는 비용이 적어서 생각보다 물가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더군다나 과일과 채소가 어찌나 싱싱하고 맛나던지!
아따까마 사막에서 아슬아슬한 24시간 버스이동을 무사히 마치고 그렇게 며칠 몸을 추스르고 향한 곳은 바로 산티아고의 한인타운!
꼭 우리나라 동대문시장 느낌이 나던 한인타운.
각종 식재료와 앞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하게될 트렉킹에 대비해 산에서 해먹을 수 있는 간편요리를 사고
에콰도르쯤에서 잃어버린 내가 정말 아끼는- 때밀이 수건! 득템ㅋㅋㅋ 그날 우린 다시 태어났다지ㅋㅋㅋ
설날에 그렇게나 먹고 싶던 떡국떡 사다가 떡국도 끓여먹고!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칠레 이전까지는 해먹긴 해도 현지 음식이 싸고 맛있어서 그렇게 자주는 아니었는데
칠레부터는 사먹는 음식이 비싸기도 했지만 원하는 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재미에 거의 대부분을 해먹고 다닌 것 같다.
이날은 다른 여행자가 추천해줬던 한국음식점 인심좋은 숙이네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맛은 좋았지만 정말 너무 인심이 좋으셔서 자꾸만 더 주시는 음식을 남기기가 죄송해 과식을 했더니 힘들어지는 바람에 다시 찾아갈 수가 없었다ㅠ
한국사람이 반가우셨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는데 시간이 지나 기억은 잘 안나지만-_-
이후에 칠레는 다녀보면서 그 때 들은 이야기와 함께 소득수준만으로 잘 살고 못 살고를 나눌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뭐 단순한 여행자의 시선일 뿐이지만 얼굴에 여유와 미소가 넘치는 사람들, 보행자를 참 배려해주던 모습에 한국은 어떤지 떠올라서.
다만 이전의 페루, 볼리비아보다 참 풍요로워보이는 칠레에서는 원주민을 찾기 어렵고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백인들은 살기 좋은 땅만 골라 정착했겠지.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칠레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곳, 인권박물관!
트립어드바이저 1위에 빛나는 박물관.
1973년에 칠레에서 있었던 피노체트의 군사쿠테타와 이후 군사독재시절 사람들의 인권이 어떻게 유린당했는지
아옌데 대통령과 피노체트의 생생한 육성부터 사람들의 증언과 사진까지,
역사를 잘 모르는 나도 정말 몰입해서 보고 이해할 수 있게 전시가 아주 잘 되어있다.
박물관 규모에서나 디자인 수준에서나 이곳에 대한 관심이나 관리수준이 참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게 안타깝네.
산티아고에 간다면 강추!
국립박물관에서 진짜 맘에 들었던 전시!
알래스카부터 남미 끝까지 연결된 판아메리카 도로를 따라 여행하면서 사진도 남기고
현지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과 어려움을 담아낸 전시.
우리 숙소에서 가까웠던 Cerro Santa Lucia
언덕으로 올라가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루는 관광객은 절대 안 갈 것 같은 도시외곽 쇼핑몰에 갔는데 진짜 커서 깜짝 놀람.
키엘크림도 있고
콜롬비아 못가서 슬퍼하던 우리 맘을 아주 쬐끔 달래준 후안발데스 까페를 발견!
맛있었음! 인스턴트지만 마트에서 후안발데스 커피도 팔길래 그거 사와서 아직도 먹고 있다ㅋㅋ
볼리비아에서 넘어온 우린 이 세련된 도시를 보고 한때 칠레엔 없는게 없겠구나 생각도 했을 정도지만
노트북 망가져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간 유일하게 서비스센터라 불리는 곳ㅋㅋ에 가서 환상이 무너졌다ㅠ
그냥 창고 같은 곳에서 여러 브랜드의 기기를 다 다루는 것 같았는데 우리껀 여기서 고치려면 중국서 부품가져오는데 한달이 걸린다 하심 어흑.
그래도 친절했던 직원과 아직 이런 일처리를 하기엔 우리의 스페인어가 너무나 짧아서 구글번역기로 대화ㅋㅋ
산티아고의 나름 명물이라는 시내 핫도그 골목.
저렴하긴 한데 정말 맛없다.
해산물이 유명한 칠레.
속도 안 좋고 돈도 아낄 겸 해산물은 먹지 말자 첨부터 다짐했는데 걷다보니 어쩌다가 도착한 Mercado Centro De Santiago 중앙시장.
완전 싱싱한 해산물 보고 바로 먹기로 결정ㅋㅋ
제일 구석에 현지인이 많은 가게로 들어가서 조개탕이랑 넘 싱싱해보여서 안 먹을 수가 없던 새우요리랑 저렴이 화이트와인까지!
어딘가 블로그에서 칠레에서 먹은 조개탕이 무지 비렸다는 글을 봤는데
해산물을 즐겨먹지 않는 우리 입에도 약간 비리긴 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정말 온갖 해산물이 풍덩풍덩 빠져있는 가격대비 만족도가 아주 높았당!
화이트와인이랑 같이 먹으면 대박.
지하철 타고 다니기에 교통이 참 편리하고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았던 숙소 근처의 풍경.
맨날 바라보기만 하고 앉아서 먹은 적은 없지만 오며가며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좋았던 곳.
아파서 며칠을 참다가 먹어서였을까 진짜 맛있던걸까
지금까지 살면서, 그리고 아이스크림 맛있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아이스크림을 먹어봐도, 상파울로에서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먹어봐도
내가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에 제일 맛있었던 가게!
내츄럴 재료만 사용한다고 쓰여있었는데 너무 크리미하거나 우유맛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적당히 달았던 아이스크림- 그립구나ㅠ
사진 보면 여기저기 다니긴 했지만 머물렀던 7일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 외출시간은 잠시, 방에서 쉰 시간이 훨씬 길었던 산티아고.
덕분에 아픈 것도 나았고 에너지도 충전하고, 무엇보다 돈을 아낀 듯ㅋㅋ
3월에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참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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