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을 읽어보다 조금 놀랐다.
1년 전 우리, 2013년 3월 4일에 산티아고에 있었구나. 맞아, 그 때 컴퓨터가 망가졌었지.
심지어 오빠는 3월 4일을 컴퓨터 해방의 날로 지정하고 이 날이 오면 컴퓨터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었는데ㅋㅋ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록을 해놔야 보고 이렇게나마 기억을 떠올리지만 기록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물처럼 빠져나가고 잊혀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그럴만 해서 그런거겠지 생각하면서 미련 갖지는 않지만 저런 소소하고 웃긴 대화는 잊혀지는게 종종 아쉬운 것 같다.
여행 중엔 나보다도 오빠가 더 기발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던질 때가 많은데 도통 일기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셔서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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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4일의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서울. 지구를 한바퀴 돌아왔다.
가족행사로 2월 중순에 귀국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길을 나설 생각을 하고 들어온터라
한국도 그냥 이 여행 중 발길이 닿은 곳 중 하나, 서른다섯번째 나라로 생각하기로 했다.
1년 4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과연 다른 곳에서처럼 한걸음 물러나서 더 초연하게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물론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편안한 부모님 집에서 때 되면 밥 주시고 차도 빌려타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 말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ㅋㅋ
숨막히는 아파트촌,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얌체운전, 미를 향한 노력과 겉치레를 강조하는 문화가 팍팍 느껴지는 거리,
이런 것들이 오랜만이라 놀랍긴 했지만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
보통은 여행 중에 신기한 걸 보면 사진을 찍곤 하는데 그 정도로 내 눈에 신기하게 다가오는 건 없었던 것 같다.
4주 정도 머무르면서 내가 진짜 신기해서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있는데
바로 이 과외 광고였다.
끊임없는 테스트와 비교로 학생들의 경쟁을 유도하는걸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이 사회.
여행하면서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한국 와서 또 느낀다. 여긴 참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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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발 인천행 비행기 태국사람
짱구로 빙의!
한국사람ㅋㅋㅋㅋㅋ
따뜻한 가족의 품, 편안한 침대, 뜨거운 물, 엉덩이 비빌 깨끗한 방바닥, 맛있는 음식들, 반가운 사람들. 역시 집이 편하긴 편해서 금방 한국사람으로 변신하고 시간도 후딱 지나가버렸당. 밀린 포스팅 다 따라잡으려고 했는데 그건 대실패 흑흑. 사방에서 들려오는 무거운 삶의 이야기에 마음은 다소 피로해 하기도 하면서 한동안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되었던 긴 여행이, 우리가 잠깐만 더 나갔다 오려구! 라고 말한 이 몇 개월의 시간이
쉽게 주어지는 시간과 여유가 아니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면서 (하지만 우린 한번 해봤으니 나중엔 더 쉬울거라 기대도 하면서ㅋㅋ)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그래도 하던 가닥으로 순식간에 짐을 쌌다. 그간 우리에게 꼭 필요한게 뭔지, 애매한 마음으로 들고 다니면 오히려 짐이 되는게 뭔지 잘 알게 되었고 알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해 업고 다니던 물건들을 비로소 다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서 짐이 훨씬 가벼워진듯.
세상여행을 통해 그동안 상상하고 그려본 우리가 살고 싶은 우리의 세상.
생각보다 괴리가 큰 건지, 앞으로 우리가 담아온 에너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국 와서 하게 됐다.
또 다른 측면에서 놀라움을 안겨준 정말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악화된 미세먼지와 건조한 공기, 그리고 살인적인 마트 물가.
여행 내내 한번도 써본 적 없는 핸드크림을 한국 와서 찾았고, 마트에 호박 하나 사러 갔다가 기겁하고 돌아왔네.
여러 의미에서 편히 숨쉴 곳이 어디인지도 생각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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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구 한바퀴,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무리 반바퀴.
보는 것보다 만나는 여행, 그래서 볼거 없다는 중미로 간당!
예상치 못했던 끈질긴 아메리카와의 인연ㅋㅋ 기다려 김치야 우리가 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