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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공기/수진이방

바람이 데려다 준 두 번째 안티구아


엘 살바도르를 떠나 과테말라 안티구아에 도착했다.

1년 반만에 돌아온 안티구아.


생각보다 더 익숙하고 생각보다 더 새롭다.


어스름한 일요일 저녁, 

근처 성당에서 잔잔한 음악이 들려오던 안티구아의 공기가 어찌나 시원했는지 길에 나오자마자 외쳤다. 


아, 행복해!


곧 며칠 전 니카라과 그라나다 포스팅을 하면서 썼던 말이 떠올라 안티구아에 미안해졌다.

이런 곳을 그라나다와 비교하다니. 별로라 했던 말 취소 취소 취소!


계절이 달라서일까 인적 드문 저녁이라 그랬을까

안티구아는 나의 기억 속보다 훨씬 더 넓고 시원하고 여유롭고 자연스럽다.







그래도 한 번 와봤다고 정말 익숙한 발길로 광장에 나가 좋아했던 라떼부터 찾았다.

이 밤에 잠을 포기하고ㅋㅋㅋ 크아 바로 이 맛이야!


오늘 낮까지만 해도 더워서 죽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정체불명의 벌레에 물려 온 몸에 알러지가 돋아 밤새 긁적이며 뒤척인게 바로 어제였는데

긴 팔을 꺼내 입을 수 있다니 꿈만 같다.







멕시코가 코 앞이라고 따꼬맛도 그립던 그 맛에 더 가까워졌다.

고향의 맛 따꼬ㅋㅋㅋ


already feel like home.


1년 반 전에 이 곳에 왔을 때만 해도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지금 여기에 우리가 있다.


바람을 따라 간다는 말, 한 때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원하는대로 옮긴 발걸음을 왜 바람 탓으로 돌리는 건지 공감하기 힘들었다.


근데, 바람이 우릴 이 곳에 데려다 준 것 같다.


매일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다음 향할 곳이 정해지지만

먼 미래보다 오늘, 지금 우리 마음만 들여다보며 걸어왔기에

그 마음이 이어져 닿은 오늘은 왠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바람이 데려다 준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처음 여행을 시작하던 그 때의 우리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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