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까사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체게바라와 바이바이를 하고 트리니다드행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비록 전날 저녁을 안 먹는다고 눈치를 주긴 했지만 그래도 꽤 친절한 편이었던 까사 할아부지.
2013년이 오면 집도 차도 소유할 수 있게 될거라며 기뻐하고 있었는데 잘 살고 계시려나.
굽이굽이 아름다운 쿠바의 시골길을 지나
빽빽한 망고나무들 사이로 뜬금없이 이런 소가 앉아있는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으라고 내려줬다.
저 빨간 계단은 뭐지. 소에 타라는 건가? 왜?!
오늘도 트란스투르.
비냘레스에서 트리니다드로 가는 버스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격일로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시엔푸에고스를 거쳐 7시간 정도 걸릴거라고 했지만 역시나 훨씬 더 오래- 9시간 정도 걸린 듯.
버스는 보기보다 불편하고 망가져서 뒤로 안 젖혀지거나 아니면 완전 누운 상태로 위로 올라오지 않는 의자에 걸리는 건 놀랍지도 않다ㅠ
슬슬 좀이 쑤셔 다리를 꼬았다 폈다 난리를 치고
이렇게 얼굴이 노래지고 눈이 퀭 해져서야 트리니다드 도착하고 보니
비냘레스 가지 말고 아바나에서 바로 왔으면 이동이 훨씬 수월했을텐데- 하고 후회가 됐다.
터미널의 수많은 까사 삐끼들을 뚫고 까사 아주머니가 제공해준 자전거 택시까지 타는 호사를 누리며 그렇게 트리니다드와 첫만남!
라틴아메리카에서 손꼽히는 콜로니얼 도시 중 하나인 쿠바의 트리니다드.
더 제대로 발음하면 뜨리니닫?
이제 별로 신기하진 않지만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대충 짐만 풀어놓고 벌써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고 있는 동네 마실
여긴 트리니다드 전통 칵테일 칸찬차라를 맛볼 수 있는 곳!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럼에 꿀, 레몬, 물, 얼음 등을 넣고
이렇게 전통 잔에 담아 마시면 완성!
무더운 트리니닫 거리를 걷다가 그늘에 앉아 한잔 하기 딱 좋은 시원한 맛에
중간중간 쿠바 아저씨들의 멋진 연주도 들을 수 있지만
가이드북을 보고 찾아온 곳이라 그런지 역시 관광객들 밖에 없고 가격도 동네 물가에 비하면 비싸다는게 함정.
레시피가 쉬워서 럼이랑 다른 거 사다가 방에서 만들어 먹으면 딱인데
쿠바에선 다른 나라처럼 길 가다 재료를 구할 상점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보니 브라질에선 매일 만들어 먹던 카이피리냐는 저 레시피에서 꿀 대신 설탕을 넣었다는 것 말고 별로 차이가 없네.
럼이나 카샤샤나 술은 비슷하니까.
물이 졸졸졸 나와 샤워도 할 수 없었던 첫날 까사.
밤이 되어서야 물이 잘 안 나오는 걸 알고 가격을 깎으려고 했는데 안 깎아줘서-_-
긴 이동으로 너무 지쳐있던 탓에 일단 하루만 자는 대신 까사에서 아침을 안 먹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건너편 까사로 짐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트리니닫 구경!
아바나랑 비냘레스에선 이렇게 현지인들이 많이 사먹는 모네다 가게를 찾기 어려웠는데
트리니다드에 오니 관광객 거리가 따로 없고 어딜 가나 현지인이 더 많은 분위기가 좋았다.
오우 메뉴도 다양행ㅎㅎ
모네다 피자로 아점!
건너편 다이끼리는 더울 때마다 애용하던 바.
저렴한 쿠바 칵테일 정말 원없이 마셨당.
쿠바의 하루는 아침부터 엄청난 더위와 함께 시작된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알록달록 콜로니얼 도시의 매력을 발산하는 트리니다드.
회색빛의 아바나 올드시티나 산으로 둘러싸인 비냘레스와는 또다른 매력.
흔한 쿠바 아주머니들의 흔한 몸매와 흔한 옷차림과 흔한 집 앞 풍경
지금도 나귀와 말들이 달그닥 달그닥 걸어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마을이다.
헉 이렇게까지 야위었었다니!
절로 살이 빠지는 쿠반 다이어트ㅋㅋ
여기는 트리니다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얼마전 지인을 만나 여행이야기를 하던 중
매일 이렇게 멀리, 선명한 산과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눈이 너무 시원했다고, 그래서 참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다시 사진들을 들춰보니 그게 너무 그립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아파트 벽이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볼 수 있던 그 시야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내 나름대로 현재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기쁨을 찾고 여행에서 다짐한 마음들을 되새기며 하루하루 깨어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는데
오빠는 내 표정이 여행 때와 다르다고 한다.
그 때 그 밝은 표정들을 다시 보고 싶다고.
나는 내 표정을 잘 모르니 그 얘기를 듣고 난감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지금도 소소한 행복이 있지만 그 때만큼 익사이팅한 이벤트가 없는 건 사실이지- 생각하며 속이 상하기도 했는데
지금 보니 오빠 너도 참 다르다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아했던 쿠바에서조차ㅋㅋ 돌아가야하나ㅋㅋ
하루는 트리니다드에서 가까운 앙꼰해변으로 (트리니다드에서 버스 있음)
멕시코 메리다 시장에서 사온 오빠의 체게바라 쪼리가 여기서 빛을 발하는구나ㅋㅋ
화려할 것 하나 없는 쿠바 해변이지만 이 앞에는 나름 호텔도 하나 있어서
저 비치체어는 투숙객이나 돈 낸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흑.
보통은 모래 아무데나 철푸덕 누워버리지만 쿠바의 태양은 정말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늘로 숨어들어가
깐꾼 리조트에 있을 때 가져온 비닐봉다리 들고
정말 우리가 멕시코에서 나온 지 일주일 밖에 안 된거 맞냐고, 쿠바 온 지 한달은 된 거 같다며
청승맞게 멕시코 추억팔이를 하고 놀았다.
우리 사랑 가세오사(탄산음료) 하나 나눠마시면서ㅋㅋ
여행 중 특히나 덥고 잘 못 먹는 동네를 다니면 달달하고 시원한 탄산음료를 더 찾게 된다.
쿠바에선 당연히 코카콜라, 스프라이트 이런 미제 탄산음료는 당연히 구경도 할 수 없지만 이 가세오사 레몬맛이 워낙 맛있어서 맨날 이거.
깐꾼에 있다오면 이런 푸른 바다를 봐도 심드렁ㅋㅋ
이러고 놀다가
트리니다드 돌아와서 모네다 아이스크림으로 겨우 더위를 식혔다.
도저히 이렇게 굶고는 못 살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까사에서 저녁을 먹어보기로 했다.
전날 까사와 시설이 어찌나 차이가 나는지 이 집은 옥상에 이런 테라스에다 일하는 아주머니도 따로 있을 정도.
욕심 많게 생긴 주인아주머니는 미국 사는 친척이 보내줬다며 맥북에 아이폰까지 가지고 있더라.
밖에서 사먹으면 보통 5-6쿡 (5-6달러) 정도 되는 메뉴도 비싸다고 하나 시켜 나눠 먹었는데
까사에서 사먹으면 보통 8쿡 정도에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런 통통한 랍스터가 8천원!이면 무지 싼건데, 밖에서 모네다 식당을 찾으면 더 싸게 먹을 수 있다는거.
이 까사는 아주머니가 사업을 담당하고 아주머니 말을 참 잘 듣는 남편이 요리를 담당했는데 요리 솜씨가 일품이었당.
완죤 마이쪙!
간만에 배 두드리며 나가서 길거리 피냐콜라다.
근데 이거 무지 독해서 한 잔 마시고 훅 감.
역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 쿠바, 트리니다드의 밤도 음악과 함께.
광장에 나오면 이렇게 무료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음악보다 더 신기한 건 사람들의 춤사위.
앉아서 음악을 듣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다들 수준급!
특히 사진에 보이는 이 네 명은 넷이서 끊임없이 파트너를 바꾸고 대열을 바꿔가며 엄청난 속도로 춤을 추는데 보고만 있어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
쿵짝쿵짝 들썩들썩
살사를 배워갔어야 했어!
오랜만에 배도 제대로 채웠겠다, 밤거리에 앉아 좋은 음악도 맘껏 즐길 수 있겠다, 기분 좋게 마무리되어 가던 트리니다드.
지나고 보니 아바나, 비냘레스와는 또다른 쿠바의 모습이 나름 새롭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다음날 우리는 이를 박박 갈며 트리니다드를 떠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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