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다드에서 씨엔푸에고스로 향하던 날 아침.
이번에는 트란스투르 말고 비아술 버스를 타기로 했다.
미리 까사 주인이 전화로 버스표를 예매해줬고, 당일날 시간 맞춰 가서 타기만 하면 되는 상황.
전날 밤까지 우린 주인한테 버스 시간을 재차 확인하고 잤고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일어나 아침 먹고 여유롭게 준비를 마치고 숙박비를 계산하러 내려갔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늦게 나가? 버스 출발 시간 다 됐는데?" 이러고 있다.
헐, 알고보니 우리한테 전날 밤까지 버스시간을 30분이나 늦은 시간으로 말해줘놓고 아침이 되어서야 자긴 맞게 알려줬다고 발뺌하는 시츄.
버스는 이미 출발 5분 전이고 완전 어이없는데 그 와중에 숙박비는 내야하고
욕심많은 이 아줌마는 장부에 숙박비에 우리가 먹은 걸 하나하나 손으로 적어가며 계산하고 앉아있었다.
까사에서 저녁 먹을 때 전부 다 포함된거라고 맘껏 먹으라고 줬던 와인에 추가 금액까지 붙여가면서-_-
어이없고 화가 나는 맘을 꾹 누르고 돈을 내고 그 때부터 배낭 메고 달리기 시작.
아 우리에게도 드디어 시련이 시작되는구나- 별별 생각을 하면서 달려갔는데
역시나 결과는 failㅠㅠㅠㅠㅠ
트란스투르는 맨날 한 시간 넘게 늦게 출발하더만 비아술 버스는 왜 또 딱 맞춰 출발하는거람.
으아아아 짜증나!
쿠바의 거리에선 배낭만 메고 있으면 온갖 까사 주인들이 잡아먹을 듯 달려들어 삐끼질.
그 삐끼들 뿌리쳐가며 버스터미널로 전력질주한 것도 힘들어 죽겠고 버스 놓친 것도 빡치는데
그러고 다시 터미널을 나서자마자 삐끼들이 우릴 가만두지 않는다.
츳! 츳!
남미에서 흔히 들을 수 있지만 쿠바에서 유독 더 심한 이 소리.
이 사이로 혀를 밀면서 내는 이 츳츳소리를 귀에 들이대면서 자기네 까사 와라, 택시 타라 아주 난리.
우리 까사 안 본다고 여기 떠난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떨어질 줄 모르는 삐끼들 때문에 여행하며 둘 다 처음으로 화를 내본 것 같다.
"아 쫌 그만 하라고!" 것도 한국말로ㅋㅋ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오후 버스표를 사고 이상한 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더워죽겠는데 이 때쯤부터 얘네 물 마시면 자꾸 배가 살살 아프고
그래서 큰 맘 먹고 산 네슬레 아이스크림은 맛도 없는데다 자세히 보니 통에 좁쌀만한 벌레들이 기어다녀 헐.
앵그리버드와 함께 분노의 기다림.
이런 일이 있으면 처음에 엄청 열 받고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모드로 변하는 나와 달리
오빠는 처음에 침착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 분노하는 스타일.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게이지가 상승하여 남은 쿠바여행 내내 쿠바를 빨리 떠나고 싶어하셨다.
저 뒤에 할머니들을 보니 쿠바의 화장실이 급 떠오르는데
쿠바에선 미리 챙겨간 휴대용 손 세정네나 소독제가 그 어느 곳에서보다 유용했던 것 같다.
손 씻을 곳도 잘 없고 비누는 더더욱 기대할 수도 없고.
그렇게 6시간을 넘게 기다려 다시 터미널.
비아술 버스를 타려니 트란스투르 버스에선 안 받던 짐값을 내놓으라 한다.
우리 앞에 있던 서양애들은 당연한 듯 냈지만 우린 이거 원래 안 내는거 아니냐고 따져서 결국 패스.
왠지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이거 원래 안 내도 되는 것 같아. 나는 안 냈어." 라고 했더니
"그래, 너는 그런 식으로 니 여행을 즐겨. 우린 우리 방식대로 할테니." 라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서 꽤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기분 나쁜 태도도 당황스러웠지만 '아, 진짜 내가 쿠바 와서 한두푼에 덜덜하면서 내 기분을 망치는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중국버스 가져다 쓰는 비아술버스.
씨엔푸에고스 도착해선 허기진 상태로 음식점에 들어가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이런게 나왔다.
스파게티마저 우릴 버렸어 엉엉.
쿠바스럽지 않은(?) 깔끔한 거리 때문인지 가기 전부터 쿠바사람들은 씨엔푸에고스가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라며 칭찬을 해댔는데
다른 도시보다 깨끗하긴 하지만 딱히 아름답다거나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걷다 우연히 발견한 꽤나 현대적인 느낌의 갤러리.
아침부터 갤러리에 커피에, 사진만 보면 뭔가 여유로운 하루 같지만
이미 쿠바에서 촘촘히 누적된 피로, 전날 상한 마음, 여기서도 역시 우릴 돈으로 보는 까사 주인, 뜨거운 공기에 지쳐서 별로 의욕이 없었다.
테이블보에 파리들이 미친듯이 달려들던 기억만 남은 가게.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그래도 왔으니 한바퀴는 돌아보자며 호세마르티 공원으로.
깨끗한 거리와 함께 씨엔푸에고스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점이라면 공원을 둘러싼 이런 프랑스풍 건물들.
호세 마르티
바다가 코 앞에 있는 도시라 말레꼰 따라 걸어나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쿠바에선 항상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까사에 있어도 덥고 불편하긴 마찬가지라 어떻게든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 애를 썼던 기억.
이날도 무작정 걷다보니 인적 드문 말레꼰 끝까지 가서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우릴 발견했는데
도착하고보니 그동안 쿠바에서 맛볼 수 없던 고요함에 모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다.
쿠바 나가려면 며칠 남았지?
바다 쪽은 그동안 볼 수 없던 넓은 마당을 가진 집들과 호텔 같은 건물들이 많았다. 럭셔리해.
평화로움은 잠시, 다시 말레꼰을 따라 돌아가는 길에서 수백미터를 따라오던 온갖 "츳츳!" "치노! 치나!" "헤이! 원달러!" 소리에 다시 분노해야 했지만
더위가 한풀 꺾이는 이 시간이 오면 숨도 쉴만 하고,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냈다는 기쁨이 몰려왔다ㅋㅋ
쿠바가 미운 게 아니라 우리가 운이 좀 없는 거라고 되뇌였지만 그렇게 차츰 닫혀가는 마음도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프라도
하루에 길거리 공연 하나쯤은 있어야 안 섭하지!
쿠바는 어쩔 수 없이 인-아웃 티켓을 다 끊고 들어가서 이제 빨리 나가고 싶은데 꾸역꾸역 남은 시간을 버텨야 했던 상황.
이제 별로 도시는 궁금하지도 않고 더워서 살 수가 없으니 바다에서 놀 수 있는 곳으로 가자!
트리니다드와 씨엔푸에고스를 오가는 비아술 버스 시간표.
근데 2012년 꺼라 함정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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