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희미한 아이슬란드의 마지막 나날들.
지금까지와 비교하면 특별히 뛰어난 자연경관이 없기도 했고 막판에는 날씨가 너무나 추워져서
매일 매서운 비바람과 씨름하며 캠핑한 기억에 다른 것들이 모두 가려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아이슬란드에서 보낸 시간은 10박 11일, 하지만 마지막 날은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아웃했으므로
이 포스팅은 그 전날까지 나머지 3일 간의 기록이라고 보면 되겠다.
남은 아이슬란드의 서쪽지역 중 일반 차로 들어가기 힘든 피요르드 구간을 제외하면 중간에 들를 곳이 별로 없어
목적지인 서쪽 끝 Snæfellsjökull (스네펠스요쿨)까지 지루한 이동이 이어지던 날.
그 와중에 이름 모를 동네에서 만나는 처음 보는 모습의 교회건물들이 중간중간의 볼거리.
80년대에 지어진 교회라는데 30년 전 이런 교회 디자인이라니, 좀 멋진듯.
다시 차를 타고 달리다 특이한 지형이 보여서 조금 걸어보기로!
낮에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한 것과 달리 다행히 맑았던 하늘이지만, 기온이 뚝뚝 떨어져서는 낮에도 쌀쌀한 바람이 쌩쌩 불어댔다.
그래도 차에만 있다가 나오니 상쾌하구나!
신기한 분화구들이 뿅뿅
처음에는 신기했던 풍경도 열흘을 보니 마지막엔 식상해져버렸는데
요즘 우리 엔터테이너 왕좌의 게임을 볼 때마다 이 익숙한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나오면 어찌나 반가운지!
한참을 달려 오후 늦게나 도착한 스네펠스요쿨.
보통은 어딘가 도착하면 인포도 있고 딱 봐도 우와, 저것봐! 싶은게 보이는데
여긴 뭘 봐야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냥 다른 차들 서 있으면 우리도 기웃기웃ㅋㅋ
저 커다란 바위(밑에 작은 점이 사람이니까 대충 크기는 가늠이 될듯) 사이로 동굴 같은게 있었는데
대충 밖에서 사진만 찍고 나옴.
그리고 이 때부터 엄청난 비포장도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돌아보게 되는데
진짜 타이어 펑크 나는건 아닐까 걱정이 될만큼 힘겨운 길이었다.
신기한 풍경이 이어지긴 했지만 너무 지쳐있었던걸까- 노력에 비해 감동은 덜 해서 약간 실망스웠던 기억.
몸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지금이라도 가서 쉬고 내일 다시 올까 싶기도 했는데
이날 보길 잘 했지, 다음날은 아침 내내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하늘도 울고 우리도 울고 산도 울어ㅜㅜㅜㅜ
힘겨운 운전을 마치고 캠핑장을 찾아 들어와 빗속에 밥 해먹고 기절- 하고 싶었으나
해가 지지 않는 아이슬란드,
이렇게 밤새 빛이 드는대다 밤새 빗소리가 그치지 않는 날이면 둘다 뒤척뒤척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못 이루고 한숨을 내쉴 때면 옆에서 오빠가 해준 한마디
"그거 알아? 우리 앞으로도 캠핑 3개월은 더 해야한다는거ㅋㅋ"
정말이지 비는 캠핑의 적.
며칠 전 로마에서도 텐트를 뚫을듯한 비가 내리는 통에 밤새 한숨만 푹푹.
그래도 텐트 펼 때, 접을 때, 밥 할 때 비가 안 오면 감사할 따름.
다음날 아침.
아이슬란드에 10박 11일의 일정으로 왔지만 사실 항공권이 가장 저렴한 날을 고르느라-_-
계획을 대충 세웠을 때 9박 정도면 되겠다 싶었지만 그냥 하루 뭐 더 할게 있겠지 하고 10박을 하게 되었던 우리ㅋㅋ
그렇게 와서 되는대로 쭉쭉 이동했더니 역시나 처음 생각처럼, 그리고 생각보다 더 볼게 없는 서쪽 덕분에 하루가 남아버렸다.
마지막날은 대망의 블루라군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이날이 바로 그 남는 하루.
비는 오지만 서쪽 해안 드라이브나 해볼까나!
아저씨 손에 물고기와 칼이 들려 있는데, 뭘 말하고 싶은 동상인지 잘 모르겠다ㅋㅋ
오빠가 내려서 사진 찍는동안 차 안에서 냠냠
빗속에 나가기도 귀찮고 추우니 단 것만 엄청 당김ㅋㅋ
Stykkishólmur라는 작은 마을.
뭐가 있는지 모르고 그냥 지도 상에서 위치만 보고 찾아갔는데 해안가에 예쁜 등대가.
다행히 비는 좀 그쳤는데 으미, 너무 춥다잉!
내려다 본 마을
요것도 교회
전날 마을에서 큰 행사가 있었는지 여기저기 깃발과 국기들이 걸려있고 근처 캠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찰을 봤던 날!
마을에서 나오는 길목에서 경찰이 차를 세우라고 해서 깜놀했는데 그냥 운전자 상태 체크라고. 아마 음주단속이었던 듯. 낮 12시에ㅋㅋ
시간상 조금만 더 달리면 레이캬빅까지 돌아갈 수도 있는 날이었지만,
그간의 경험상 작은 마을일수록 캠핑장이 더 저렴하고 좋을 것 같아 다시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을 찾아 고고!
작은 마을에서 캠핑장 사인 하나 보고 들어가봤는데
우리 예상대로 맘에 쏙 드는 장소, 당첨!
날은 흐리지만 예쁘고 조용한 호숫가에 이렇게 농장건물이 달려 있어 비를 피해 건물 안에서 쉬고 주방도 이용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
안에는 농장에서 직접 만든 각종 유기농 식품과 핸드메이드 울제품을 소규모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구경하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근처 아이들 견학왔을 때 교육용으로 틀어주는 농장 비디오를 틀어주셔서
평소 궁금했던 이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살짝 들여다보고.
텐트 칠 때부터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강아지랑도 놀고
따뜻한 곳에 앉아 그동안 못한 사진정리도 하고
농장에서 뛰어놀며 자란 닭의 달걀도 사서 라면에도 넣고!
역시 좋은 물, 신선한 재료가 제일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살면서 먹어본 세번째로 맛있는 라면을 먹었던 날.
밤새 후두둑 후두둑 빗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금은 고개를 내밀던 아침
밤사이 캠핑장에 부쩍 늘어난 차들, 단체로 랜드크루저!
아마 우리가 못간 서쪽 피요르드의 오프로드를 달리는 차들이 아닐까.
아아 역시 랜드크루저가 짱인데ㅠ 우리 김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나저나 맨 앞의 차 텐트 좀 간지다. 우리도 저렇게 해볼걸!
우리 김치 꼭 닮은 붉은 색 랜드크루저와 하루동안 엄청 정든 강아지랑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아이슬란드에서의 마지막 하루, 우리는 블루라군에 올인하러 간다!
이동 중 이케아가 보여서 들어가 그동안 못한 와이파이 좀 하고 미트볼도 먹고
그 와중에 내일 아침에 먹겠다며 빈통에 잼 담아오고ㅋㅋ
(아이슬란드 식빵 진짜 맛없어ㅠ)
드디어 블루라군에 도착.
블루라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비싼-_- 관광지다. 뮈바튼 온천의 2배? 3배?
뮈바튼과 달리 해수온천이라는데 차이는 잘 모르겠고 여기도 고운 에머랄드 빛깔의 온천수.
차이가 있다면 조금 더 고급스러운 시설과 큰 규모,
온천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고 무한 리필되는 진흙팩을 얼굴과 몸에 바를 수 있다는 점?ㅋㅋ
지금 생각해도 너무 비싸서 속이 쓰린데 그래도 물도 좋고 팩도 좋고 다시 가면 또 갈 것 같다.
악 돈 아까워! 그러면서. 근데,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다시 갈 일이 있기는 할까?
언제나 즐거운 순간은 기록을 남기지만 힘겨운 순간의 기록이 없다.
기록과 달리 기억은 힘겨운 시간이 더 길고 지루한데.
아이슬란드에서의 마지막 밤은 하루종일 온천에서 보낸 긴 시간이 무색할만큼,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춥고 매섭게 비바람이 몰아쳤다.
초반에 볼거리가 가득할 때 이렇게 비가 왔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할 일 없던 마지막 날들에 이렇게 비가 내려서 다행인 것 같다.
다른 거 다 떠나서 이제 좀 따뜻한 곳에서 자겠구나! 싶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던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한채.
아이슬란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