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치앙마이였지만 도시에서 한걸음 더 벗어나고 싶다면 여기 빠이(Pai).
치앙마이에서 3시간, 일반버스도 있고 일반승합차도 있고 여행사에서 운행하는 아야서비스도 있는데 가격은 다 비슷하다.
아야서비스를 예약하면 숙소 앞까지 썽태우로 픽업해준다는게 장점이라면 장점.
어떤 종류의 차를 타든 빠이로 향하는 구불구불 커브길은 멀미 나기로 악명 높다는데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와 함께 차를 탔던 무지하게 시끄러운 중국인 가족이 있었는데 (요즘 치앙마이는 중국 여행자들이 아주아주 많다)
차에 타자마자 정말 쉴 틈 없이 먹어대던 그 아줌마, 결국 중간에 봉지에 올려내시고 달리는 차 안에서 그걸 창 밖으로 휙- 던져버렸단다 헐.
나는 전날부터 심해진 감기 기운에 그냥 자버려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멀미도 멀미지만 그거 안 봐서-_-
빠이는 정말 느릿느릿 걸어도 30분이면 다 보고도 남을 만큼 작은 동네.
대신 마을 외곽으로 폭포나 온천 같은 좋은 자연,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있어서 여행자들은 스쿠터 빌려타고 많이들 놀러다닌다.
우리도 첨엔 그럴까 했는데, 감기 때문에 몸도 영 찌뿌둥하고 오빠나 나나 부릉부릉대는 이륜은 왠지 정이 안 간다.
자전거는 참 좋아하지만 그러기엔 언덕길이 너무 많다 하고 모래먼지 날리는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는 것도 무섭고.
덕분에 우린 또 잉여. 분명 힘이 남아도는 여행 초반이었다면 가만히 잘 있지 못하는 내 성격에 여기 가자, 저기 가자 귀찮게 했을텐데
이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 안 가도 하나도 안 아쉽고 그저 우리의 속도대로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이 제일 좋다.
참 아기자기하면서 일본이 많이 떠오르는 태국의 마을들.
이런 시골 마을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다.
둘다 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해도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는 우리, 카페를 옮겨다니며 그저 멍만 때림.
예전부터 남들 하는대로 초조하게 따라가지 않고 나름의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더 내 안의 사유만큼은 치열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또한 치열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사유 또한 자연스럽게, 생각이 흐르면 흐르는대로 멍하면 멍한대로 있으면 되는거 아닌가.
흔히 여행을 떠나오면 이곳에서는 그곳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냐고 무얼 느끼고 생각했냐고 묻지만
글쎄, 난 솔직히 생각 안 하고 멍 때린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냥 가만히 귀로 들려오는 소리, 코에 닿는 새로운 향기와 만나면서.
머리는 평소에도 많이 써왔으니까. 평소에 잘 사용하지 못했던 감각들을 깨우고 안 쓰던 근육들을 움직이는 재미와 기쁨을 배운다.
방갈로와 함께 빠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오두막이 있던 숙소.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중심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정말 주변에는 논밭 말고는 아무 것도 없던 곳.
걸어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자전거 빌려타고 슝- 달려가기로 했는데 감기 때문에 것도 힘들어서 헉헉거리며 도착.
과테말라 이후 마땅히 사고 싶은 바지가 없었는데 일년 만에 아주 편안한 바지 하나 득템한 오빠.
태국에서 마사지 받으러 가면 갈아입으라고 주는 옷이 너무 편해서 눈 여겨 봐뒀다가 치앙마이 선데이마켓에서 건졌당!
오랜만에 손글씨로 일기 쓰는 여유까지.
사실은 여기서 첨 보는 애벌레처럼 생긴 이상한 생명체에 손을 쏘여서 너무 놀라 막 호들갑 떨고 난리침ㅋㅋ
둘다 좋아라 하는 애교 많은 냥이들까지 옆에 놀러오고!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일지 몰라도 간만에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그 느낌이 참 좋았는데 밤이면 역시나 시린 바람이 숭숭ㅠ
치앙마이든 빠이든 맘에 들면 몇 주라도 눌러앉을 생각이었지만 편치 않은 잠자리 때문에 번번히 실패였다.
오전에 열리는 마을 장에 나간 날.
대부분의 사진이 아이폰으로 찍은건데 이거 너무 막 굴렸나. 렌즈에 상처가 났는지 사진이 다 영 뿌옇당 흑.
엇! 이게 모야! 김치 아니야? 흥분해서 코를 들이대고 킁킁대는 나에게 선뜻 맛을 보게 해주신 아주머니.
이거 뭔가 김치랑 정말 비슷한 맛이야!
저쪽엔 묵도 있고! 오오 신기해.
아저씨가 재료 넣고 슥슥 비벼주는 면요리
국물 있는거랑 김치 비슷한거 다 달라고 하고 자리에 앉아 냠냠
와오 무지 매운데? 김치 파워! 이거 먹고 감기 다 날리자!
먹으면서 가만히 둘러보고 있자니 장사하시는 분들 생김새도 그렇고 사용하는 언어도 보통 태국사람 같지가 않다.
나중에 들어보니 여긴 과거 중국에서 이동해온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이렇게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할 수는 있지만 정해진 구역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
빠이 말고 더 동북부 메살롱에 가도 난민들이 모여사는데 그들의 언어와 역사를 배우고 교육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단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도 있다.
참고로 이곳 빠이는 치앙마이보다 더 북쪽. 여기서 더 올라가면 미얀마, 중국, 라오스와 인접한 국경지대에 이르게 된다.
시장에서 나와 또 카페.
더울 때는 묻지도 않고 알아서 시럽을 잔뜩 넣어주는 달달한 태국 라떼가 딱 좋아.
해지기 전부터 야시장 장사 준비하는 분들로 고기 냄새가 진동.
시린 아침 공기, 따스한 햇살, 모락모락 뜨거운 커피, 오빠 무릎에서 잠든 냥이까지.
한가로운 1월 빠이의 아침이 무척이나 그리워지게 만드는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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